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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05. 2021

코스트코에서 구찌 가방을 파는 이유

앵커링 효과

주부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코스트코 연간회원 가입하기였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롯데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것도 이유지만, 코스트코에 가면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진열되어있는 명품 가방들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지금은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지라 지름신은 감옥에 고이 모셔 두었지만, 남들 다 일하는 평일 낮시간에 아이쇼핑 (window shopping)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믿고 싶다.) 매장에 들어서면 프라다, 루이뷔통, 구찌 가방들이 "나 좀 데려가 주세요"하고 내게 계속 말을 건다. 가격도 다 어마 무시하다. 요즘 가방은 3백만 원은 기본이고 비싼 가방은 1천만 원까지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파는 코스트코에서 왜 뜬금없이 비싼 구찌 가방을 파는 거지?


행동경제학에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앵커링 효과"란 배가 한번 바다에 닻을 내리면 아무리 파도가 쳐도 닻을 내린 곳에 그대로 머무르듯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어떤 기준이 되는 값이 일단 입력되면 이 기준점이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코스트코에 입장하는 손님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구찌 가방과 오메가 시계들은 3~8백만 원에 달한다. 손님들의 무의식 중에 8백만 원이라는 금액이 머리에 먼저 닻을 내리면, 향후에 보는 식료품과 생활용품들이 상당히 저렴하게 느껴진다.


아내에게 용돈 타서 쓸 때도 앵커링 효과는 용이하다. 일단 필요한 용돈이 30만 원이라면 30만 원보다 훨씬 큰 50만 원을 먼저 부른다. 앵커링 효과 노려본다고, 100만 원처럼 너무 큰 금액을 부르면 등짝 스매싱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일단 50만 원을 부르고 나서 아내가 바로 오케이 하면 땡큐이고, 아내가 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깎아도, 나는 좋다. 내 원래 목표 금액은 3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패션 기업들이 특히 앵커링 효과를 잘 사용한다. 겨울철 캐시미어 100% 코트가 점포 A와 B에서 30만 원에 판매 중이다. 똑같이 30만 원인데, A점포에서는 30만 원 가격택을 붙여서 팔고 있고 B점포에서는 원래 정가가 100만 원인데, 70% 할인해서 30만 원에 팔고 있다고 광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가격과 품질의 코트더라도 B점포에서 구매를 한다. 처음 내린 닻의 가격이 100만 원이기 때문에 30만 원이 훨씬 더 저렴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 기업인 자라와 마시모두띠가 앵커링 효과를 잘 활용하여 한국에서 장사하고 있다. 스페인 현지보다 훨씬 비싼 가격택을 먼저 붙여놓은 다음 겨울과 여름 세일 기간에 최대 70%까지 할인을 해준다. 이 시기에 자라 혹은 마시모두띠 매장에 가보면 옷을 사기 위한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부동산 중개사무소 실장님들도 앵커링 효과를 잘 쓴다. 실장님들은 항상 내 예산보다 훨씬 높고 예쁜 집을 첫 번째로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가격이 낮고 집 상태가 최악인 집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손님의 예산보다 살짝 비싸지만 적당한 집을 보여준다. 맨 첫 집에서 높은 가격과 품질에 내 머리는 닻을 내린 상태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본 집이 내 예산보다 살짝 더 높아도 계약하기에 부담이 없어 보인다.


주식 투자 시에도 앵커링 효과를 활용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애플은 2020년 7월에 한주에 400불 정도 했는데, 8월에 4:1로 액면분할을 했다. 애플의 액면 분할이란 1주에 400불에 거래되던 것을 4조각으로 나누어서 한주에 100불로 분할하는 것뿐이다. 기존에 1주(400불/주)를 갖고 있던 사람은 액면분할 후 4주(100불/주)를 갖게 된다. 이론적으로 액면분할 시 기업 가치가 변하지는 않기에 주가 변동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400불이나 하던 주식이 100불이 되니, 상대적으로 저렴해졌다고 생각해서(앵커링 효과) 애플 주식을 사들이게 된다. 액면분할 발표 다음날 애플 주가는 10% 상승했다. 현재 애플의 주가는 133불이다(1월 4일 기준). 액면분할 5개월 만에 33%나 주가가 올랐다. 10억짜리 집이 5개월 만에 13억 3천만 원이 된 것이랑 같은 거다.      


<오늘 배운 경제 용어>


ㄱ. 앵커링 효과 : 행동경제학 용어로써, 배가 한번 바다에 닻을 내리면 아무리 파도가 쳐도 닻을 내린 곳에 그대로 머무르듯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어떤 기준이 되는 값이 일단 입력되면 이 기준점이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초두효과라고 한다. (첫인상의 중요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L. 액면분할(주식분할) :  시가총액 변화 없이 기존 주식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일정한 비율로 액면가를 나눠 그 주식수를 증식시킨다. 원칙적으로 액면 분할로는 기업 가치가 변하지 않지만, 주가가 오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는 주식 거래자들이 주가가 저렴해졌다고 느끼는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참고 문헌>


최소한의 경제법칙 (저자 : 태지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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