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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05. 2021

아빠 미워!

"쾅"


둘째 딸아이가 문을 쾅하고 닫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내가 잔소리 좀 했다고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유튜브를 보면서 언니와 함께 춤을 추길래 딸한테 한마디 해버렸다.

 

"저녁 식사 후에 춤을 추면 소화가 안된다고 전에 말한 것 같은데, 식사 전에 춤을 추면 안 되겠니?"


나름 사춘기 오려고 하는 딸아이의 심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차분한 톤으로 천천히 말했는데, 딸아이 귀에는 잔소리로 들렸나 보다. 화난 것 까지는 좋은데, 문까지 "쾅"하고 닫으니 내 기분도 바닥을 달린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자식들 키워 봐야 소용없다'는 마음과 함께 마음 깊숙이 숨겨 놓았던 지름신이 꾸물꾸물 활동을 시작한다. 늦은 밤에 다들 꼴 보기 싫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간 읽고 싶은 책이랑 사고 싶은 옷이 있어도 아이들 것을 먼저 구매한다고 꾹 참고 살았는데, 애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깐 정말 너무 섭섭하다. 섭섭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신용 카드 들고 집 근처 쇼핑몰로 달려갔다. 쇼핑몰을 향해 달려가는데, 쇼핑에 대한 기대 탓인지 얼굴에 부딪히는 차가운 바람 탓인지 기분이 점점 풀린다. 10분을 달려 쇼핑몰에 도착했는데,


'이런 젠장, 문이 굳게 닫혀있다'


코로나 때문에 단축 운영이란다. 평소 밤 10시 30분까지 운영하던 쇼핑몰인데, 코로나 2.5 단계라서 오후 9시에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신나게 돈 좀 써보려고 했더니 하늘이 막는구나!'


6년 전 러시아에서 거주할 때의 일이다. 둘째 딸아이의 오른쪽 눈에서 자꾸 노란색 눈곱이 나오면서 눈이 빨갛게 변했다. 너무 걱정이 되어 러시아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딸아이 속눈썹이 안쪽으로 자라서 교정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눈을 찔러 문제가 생길 거라 하셨다. 그렇게 해서 바로 수술을 하기로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수술 전에 둘째 딸아이의 옷을 모두 벗기고 수술 시에 입는 하얀색 수술복 한 벌만 입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간단한 눈 수술이지만 아이들의 경우 마취를 해야 해서 마취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니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 푸틴처럼 무섭게 생긴 간호사 두 분이 딸아이를 데리러 왔다. 만 4살밖에 안 된 어린 딸아이는 간호사 아저씨를 보더니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순간 직감하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하얀색 수술복 하나만 입은 딸아이가 수술실에 혼자 실려가는데 갑자기 그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변하면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수술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러시아 의사들은 믿을 만 한가? 마취가 잘못되지는 않겠지?' 오만 가지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손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제발 딸아이의 수술이 잘 끝나게 해 주세요.'

'딸아이가 건강하게 우리 품에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한 시간이 한 달처럼 길게 느껴지던 수술이 끝나고 딸아이는 한쪽 눈에 하얀색 붕대를 하고 실려 나왔다.


수술 후 한쪽 눈만 보여서 많이 불편하고 놀랄 만도 했을 텐데 딸아이는 엄마 아빠를 보더니 싱글 생글 웃는다.

 

"아빠!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수술 시간 내내 울먹이며 기도하다가 딸아이의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모든 걱정이 날아갔다. 무사히 우리 품으로 돌아온 딸아이를 보며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마음속으로 연신 감사 기도를 드렸다.


딸아이가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게 엊그제인데, 하느님의 고마움을 잊고 요즘엔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셔서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딸로 만들어 주시면 과연 나는 거기에 만족하고 기도를 멈출까? 아마 그때 즈음엔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음엔 좋은 직장, 그다음엔 좋은 배우자, 이렇게 끝도 없이 기도하겠지?


하느님이라도 이렇게 기도하는 놈은 정말 밥맛일 거 같다. 막상 도와줬더니 감사하단 말은 안 하고 계속 더 도와달라고 칭얼 데기만 하니 누가 좋아하랴. 하느님이 조금만 도와주셔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계속 감사드리면, 앞으로 더 잘해 주실 텐데, 역지사지를 잘 못하는 나는 오늘도 딸아이의 괴팍한 성격 좀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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