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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31. 2021

꼰대와 똘레랑스   

Emily in Paris

꼰대라는 말의 의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아버지나 선생님처럼 나이가 많은 남자를 의미했는데, 요즘에 쓰이는 꼰대의 의미는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의 뜻이 강한 것 같다. 주말에 휴대폰만 하루 종일 쳐다보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너, 그렇게 휴대폰만 봐서, 나중에 뭐가 될래"하고 잔소리하고 싶은 것을 보니 확실히 꼰대가 다 된 것 같다.


법륜 스님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서 책 읽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 쌀이 나오냐면서 농사일이나 도우라고 잔소리하셨다고 한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지라, 스님은 부모님 몰래 숨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사색을 즐기셔서 그런지 지혜로운 사람이 되셨다. 그래서, 법륜 스님 부모님처럼 딸아이가 책을 못 읽게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딸아이는 법륜스님과 달리 "아싸" 하면서 더 좋아할 것 같다.


요즘 세대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듯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도 한국과는 너무 다른 사고방식에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아침 9시에 있던 경제학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업시간보다 30분 일찍 가서 조용히 빈자리에 앉아 있었다. 9시가 다가오면서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샌드위치를 들고 온 학생이 맨 뒷자리도 아닌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수업을 들으며 계속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여학생은 9시 정각에 헐레벌떡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슬리퍼에 잠옷 차림이었다. 9시 수업인데, 8시 50분에 일어나서 눈곱도 안 떼고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이러한 행동들을 보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수업을 진행하셨다. 학생들의 기이한 행동들도 충격이었지만, 이러한 행동을 보고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 교수님의 행동도 충격이었다. 수업 후 교수님 실에 찾아가 교수님께 여쭤보았다.


"교수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음식을 먹고 화장을 하는 데도 화가 나지 않으세요?"

나이가 지긋하셨던 교수님은 웃으면서 내게 말씀해 주셨다.

"강의실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라네. 학생들이 내 수업을 열심히 듣건 안 듣건, 그건 학생들의 몫이지."


교수님의 말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초중고 12년간 접한 스승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졸기라도 하면 "사랑의 매"로 엉덩이 혹은 손바닥을 맞고 자랐기에, "수업 시간에 수업을 들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은 학생의 몫"이라고 말하는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삶에 서로 간섭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정"이라는 정겨운 문화가 있어 좋지만, 종종 "정"은 과해져서 "오지랖"으로 변질된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다행이지, 혼기가 지나서도 아직 결혼을 안 한 사촌 동생들은 다른 친척들의 공격 대상이 된다. 취직은 했느냐, 결혼할 친구는 있느냐, 돈은 얼마나 모았냐, 연봉은 얼마냐 등등 과한 관심과 사랑으로 사촌 동생들의 뚜껑을 열리게 한다. 친척 어른들은 나이 서른이 지나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게 사람 사는 도리라며 자신의 가치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한다.


우리나라에서 "차이"는 "차별"을 부른다. 어려서부터 핑크색을 사랑하던 둘째 딸이 초등학교 입학 후 무채색 옷만 고르길래 이상해서 물어봤다.


"딸, 요즘 왜 핑크색 옷 안사고 회색이랑 검은색 옷만 사?"

"아빠, 핑크색 옷이 좋긴 한데, 학교에 입고 가면 관종 취급받아."


초등학교 때부터 튀는 아이는 "정"으로 맞는 세상이니 우리나라에서 창의적 인재가 나오는 것은 정말 힘든 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대학원 공부 때문에 프랑스에 산 적이 있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한창 유행하던 때였는데, 길거리 어디서나 강남 스타일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던 때였다.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에 학교 적응은 굉장히 수월했다. 프랑스 말을 버벅거리는 동양인에게 그들은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었고, 한국과 한국음식을 너무 사랑한다고 관심을 표했다. 그렇게 쉽게 프랑스에 적응해 가는가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다른 곳에서 일이 터졌다.


한국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느낀 것들이 프랑스에서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참 많았던 것이다. 예컨대, 은행을 방문했는데, 은행 텔러가 딱 한 명만 있었다. 일하는 분이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안 쪽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고객과 대면 업무를 하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줄이 아무리 길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루는 송금문제로 은행을 찾아가 한 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갑자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점심시간이라며, 은행 창구를 "탁"하고 닫는 게 아닌가! 한국 같으면 교대 근무자가 일을 이어서 처리할 터인데, 프랑스는 점심시간에 누구도 일하지 않았다. 한 시간도 아니라 두 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 동안 나는 은행 안에서 쭈그려 앉아 기다려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설치를 위해서 기사님이랑 예약을 잡아야 했다. 한국은 통신사에 전화하면 다음날 기사님이 오시는데, 프랑스는 다음 주도 아니고 다음 달에 시간을 잡아주었다. 그것도 내 스케줄이 아니라 기사님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레스토랑에서도 나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아무리 급해도 웨이터를 소리 내어 부르거나 손을 흔들어서는 안 되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웨이터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성격 급한 한국사람으로서 벨이라도 설치해주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러한 것들이 프랑스 특유의 똘레랑스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똘레랑스는 종종 우리나라 말로 관용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관용보다는 내가 존중받고 싶듯 남도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존중받고 싶듯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도 존중받아야 한다. 다르다고 해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으면 토론을 통해 조율해 나간다.


식당에서 우리는 손님으로 갑이 되기도 하지만, 일터에서는 을로 변한다. 갑질 하는 상사나 땅콩 항공의 조현아 씨를 욕하면서, 식당이나 쇼핑몰 종업원들이 잘못하면 갑이 되어 종종 화를 낸다. 프랑스에서 웨이터는 손님 아랫사람이 아니라 엄연히 손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손님이 존중받아야 하듯 웨이터도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에서 느낀 똘레랑스이다.


얼마 전에 정주행 한 드라마 Emily in Paris의 여주인공 Emily(미국인)도 프랑스에 살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샤워기가 고장 나서 수리 기사를 불렀는데, 맞는 부품이 없다면서 부품 구할 때까지 몇 주 기다리라고 한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한 Emily에게 프랑스 직장 동료들은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냐면서, 힘들게 쌓아 올린 프랑스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 일 이야기하는 Emily에게 밥 먹는데 왜 일 이야기를 하냐며 주의를 준다. 전형적인 미국 사람인 그녀가 프랑스에 살면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보다 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옳지 않은 일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렇게 생각과 가치관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꼰대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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