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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Feb 05. 2021

옷가게에서 한 번 입어보라고 하는 이유

보유효과 (Endowment Effect)

맨날 H&M과 ZARA에서 세일할 때만 옷을 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신세계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다. 맨날 싸구려 옷만 입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렇게 돈만 벌면서 사는 게 원통하기도 했다. 그래서, 큰 맘먹고 백화점 남성복 매장으로 진격했다. 일단 쇼핑하는데 초짜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결혼식 할 때 장모님이 맞춰주신 양복과 가장 비싼 구두를 열심히 광 낸 다음 넥타이까지 매고 남성복 매장으로 진격했다. 말끔하게 포마드 머리를 하고 정장을 쫙 빼입은 영업사원이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어떤 옷 찾으세요?"


순간 얼굴이 빨개지면서 등에 식은땀이 났지만, 쇼핑 초심자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말했다.

 

"연말 파티에 입고 나갈 옷을 찾고 있습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찾고 있어요."  

"아, 마침 고객님을 위해 딱 맞는 신상 제품이 있는데 한 번 입어 보세요 고객님."


영업사원은 네이비색 보다 살짝 더 밝고 회색 가는 줄무늬가 들어간 양복을 권했다. 마음은 '얼마예요?' 하고 물은 다음 가격이 비싸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탈의실에 들어가서 새 양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와, 고객님 한테 딱 어울리네요. 너무 튀지 않으면서 은은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백화점의 현란한 조명 아래,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은은한 스트라이프가 똥배를 날씬하게 연출해 주었고, 오묘한 파란색은 무심한 듯하다가도 신경 쓴 느낌을 잘 전달해 주었다.

 

"이 옷으로 할게요."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할부는 몇 개월로 도와드릴까요?"

"당연히, 일시불이죠."


마음은 무이자 할부 12개월이었지만, 없어 보이기 싫은 알량한 자존심에 얼만지 묻지도 않고 옷을 샀다. 처음으로 가격표도 안 보고 옷을 사던 그날 카드 영수증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몇 달간 다이어트(?)를 이유로 점심을 굶었다. 그렇게 비싼 돈 주고 산 옷이라서 그런지 옷이 너무 맘에 들어서 정말 아껴서 입었는데, 지금은 살이 빠져서 옷걸이에 걸려만 있다. 그래도 당시 매장에서 그 옷을 입는 순간 바로 난 직감했다.

 

'이 옷은 나를 위한 옷이야!'


옷을 구매하고 난 뒤 깨달았다. 영업 사원의 마케팅 전략에 당했다는 것을 말이다. 행동 경제학에서 보유효과 (Endowment Effect)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일단 소유하거나 체험을 하게 되면 그 물건에 애착이 생겨서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보유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말이다. 영업 사원이 옷을 입어보라고 해서, 그 옷을 체험하는 순간 옷이 더 좋아 보였고, 계속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보유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손실 회피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뇌는 상실에 대해 더 큰 자극을 받기에 일단 보유하거나 체험한 물건은 계속 가지고 있으려 한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회관계, 권력 등도 포함된다.)


빅토리아 대학의 잭 너치 교수가 실험을 통해서 보유효과를 밝혀냈다. A그룹에 머그컵을 먼저 나누어 주고  난 후 원하면 머그컵을 초콜릿으로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B그룹은 초콜릿을 먼저 나누어 주고 원하면 초콜릿을 머그컵으로 바꿔 주겠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 머그컵을 먼저 받은 A그룹의 89%는 계속해서 머그컵을 보유했다. 초콜릿을 먼저 받은 B그룹의 90%는 계속해서 초콜릿을 보유했고, 단지 10%만이 초콜릿을 머그컵으로 교환했다.


비슷한 실험을 침팬지를 대상으로도 진행했다. 침팬지의 경우 머그컵으로 실험하면 화내서 던질지도 모르니깐 맛있는 땅콩버터와 달콤한 주스로 실험을 했다. 예상대로, 침팬지들도 자신이 처음 받은 음식을 계속해서 보유하고자 했다.


보유효과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가 체험 마케팅이다. 옷가게의 경우 옷을 먼저 입어보라고 해서 손님과 옷 사이에 애착형성을 유도한다. 밀리의 서재, 넷플릭스, 유튜브처럼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일단 무료 체험 기간을 주어서 해당 서비스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무료 제공 기간 이후에 필자처럼 해지를 꼭 챙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비스를 이용한다.


얼마 전에 딸아이들을 위해 인강을 알아봤다. 여러 개의 업체들이 있었는데, 모든 업체들이 태블릿 PC를 무료로 보내주고 15일간의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했다. 사람은 물건을 소유하는 순간 내가 선택한 물건에 대해 훨씬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물건을 다시 반환해야 하는 순간 손실 회피 회로가 우리의 머릿속에 작동해서 계속 보유하도록 유도한다.


부동산 시장의 가격이 잘 안 떨어지는 것도 보유효과와 관련이 있다. 내가 산 집과 땅은 왠지 더 많이 오를 것 같고 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는 더 오를 것 같아서 안 팔고, 침체일 때는 증여를 하면 했지, 내가 산 가격보다 절대 싸게 팔 수 없다는 머릿속 손실 회피 회로가 작동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들고 있는 주식과 부동산이 정말 가치가 있는 자산인지 아니면 내가 보유효과에 젖어서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오늘 배운 경제 용어>


 ㄱ. 보유 효과 : 사람들은 일단 자산이나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 그것을 갖기 전보다 그것에 대해 훨씬 더 후한 평가를 한다.


<참고 문헌>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2/article_no/5531/ac/magazine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10/816390/


<이미지 출처>


신세계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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