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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Feb 06. 2021

#90 중독

지난 주말에 아버지를 뵈러 대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서울역에서 같이 KTX를 타고 내려갔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머리가 희끗희끗 변해있다.  


"요즘 회사 일은 좀 어때?"

"형, 진짜 너무 힘들어. 다 때려치우고 산에 들어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


동생의 그 말에 안쓰럽고 울컥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동생에게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쁘지 않고 일이 힘들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쉬운가 보다. 친구들에게 가끔 안부를 물으면 다들 대답이 한결같다.


"야, 요즘 너무 바빠. 그리고, 회사 다니기 싫어서 죽을 것 같은데, 애들 때문에 끝까지 버텨야지 뭐."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나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너희들 때문에 회사 오래 다녀야 한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을 바라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얼마 전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Ted 영상을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식들이 어릴 때 부모의 마음이 불안하면, 자식들도 똑같이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식들은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되는 것이 었나?'

'세상은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부모님으로부터 불안감을 계속 느끼면, 아이 뇌 속에 엔도르핀(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모르핀"같은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망가진다고 했다. 어린 시절 불안한 상태에서 자란 아이는 쉽게 불안정해지고 항상 공허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공허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에 쉽게 중독된다. 중독의 대상은 다양했다. 권력, 음식, 물건, 쇼핑, 섹스, 돈, 마약, 인터넷, 유튜브 등등.....  


중독 측면에서 바라보니 정치인들이 갑자기 불쌍히 보인다.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항상 공허감이 느껴지니깐 공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권력에 집착했던 거다.   


남 욕해서 뭐할까? 나 또한 중독 증세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고, 나이를 먹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권력과 돈에 중독되어 있었다. 동기들보다 빨리 출세하려고 야근을 밥 먹듯 했고,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서 돈에 집착했다. 회사를 관두면서 권력과 돈에 집착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집착의 대상이 바뀐 것뿐이었다. 지금은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중독되어 있었다. 글 쓰는 것이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들로 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하는 것인지 가끔씩 헷갈렸다. 브런치에 로그인했을 때 새로운 알림을 알려주는 파란색 점이 보이면 안도했고, 점이 안 보이면 불안해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브런치를 열어 파란 점을 확인했다. 파란 점이 계속 보일 수 있도록 매일 미친 듯이 글을 쓴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겉으로 글쓰기는 나의 천직이야 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인정 욕구에 중독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40여 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당시 스무 살이면 결혼하던 시대에 어머니는 서른 살에 결혼을 하셨다. 지금으로 따지면 마흔 넘어서 결혼하신 거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부잣집 막내 따님이 눈에 콩깍지가 씌어 찢어지게 가난한 7남매 장남과 뒤늦게 결혼을 했다.


요즘 같으면 그냥 혼자 살아도 되었을 텐데, 당시 사회분위기상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덕분에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혹독히 하셨다. 명절 때 시누이들과 시동생들은 누워서 TV를 보거나 대청마루에 앉아서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데, 어머니는 혼자서 명절 음식 준비를 했다. 4살짜리 아이의 눈에도 이건 불공평해 보였는지 내가 한 마디 했다고 한다.

 

"할머니, 왜 우리 엄마만 일하고 있어요?

"이놈의 자식이 부엌에 오지 말고 얼른 저리 가서 놀아!


엄마는 내가 자란 후에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 이야기를 종종 내게 말해줬다.

"너,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할머니한테 엄청 혼났어! 그래도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 엄마는 좋았단다."


어린 시절 시집살이로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일까? 항상 공허함이 날 쫓아다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아, 항상 뭔가에 몰두했다. 좋게 말해 "몰두"지 나쁘게 말하면 그것은 바로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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