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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un 29. 2020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

회사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있었다. 나보다 10년 선배였는데, 성격이 정말 좋으신 분이셨다. 비락식혜 광고에서 맨날 의리를 외치시던 김보성 형님보다 더 의리를 중요시 여기셨고, 술이든 업무든 최선을 다하셨다. 매사에 일을 적당히 하던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런 날 갈구지 않고 참 잘해 주셨다. 일할 때든 술 마실 때든 궁합이 참 잘 맞아서 회사 생활 15년 중에 14년을 그분과 같이 일했다. 신입사원 초반에 1년간의 지방 영업업무 기간을 빼면 회사 생활 14년 내내 모셨던 선배다. 술도 잘 드셔서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술집 주인이 '영업시간 끝났으니, 나가 주세요'란 말을 들을 때까지 마셨다.

이미지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15584153

2009년 9월 즈음으로 기억된다. 8월에 어머니가 말기 위암 진단을 받으시고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이제 막 아들 출가시키고 친구분들과 한창 놀러 다니실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갑자기 잃은 충격에 난 제정신이 아니었고, 장례를 치르고 회사에 돌아와서도 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무렵 해외 바이어로부터 주문이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 못했고 나의 주문 실수로 인해 회사는 몇 백만 원의 손실을 입었다. 사내 감사실에서 긴급 파견되어 우리 부서를 전수 조사하기 시작했고, 우리 부서원들은 경찰서에서 취조당하는 피의자처럼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그 당시 난 징계를 받고 지방 영업 지점으로 좌천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그 선배가 주문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면서, 나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셨다. 선배의 그런 모습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그 사건 이후로 난 선배를 더 따르게 되었다.


인생을 살다보니 선배처럼 '내 탓이오'를 외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간 내가 알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잘되면 자기 때문이고, 잘못되었을 때는 모두 남 탓을 했다. 우리 부모님도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평소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 수능 시험을 완전히 망쳤다. 평소 점수보다 100점이나 낮게 나와서 지방대에 진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급 임원에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부모님의 기대가 내심 컸는데, 내가 그 기대를 처참히 짓밟았던 것이다.

내가 수능 성적표를 받아오던 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소리치셨다.  


"아니, 집구석에서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놀면서 애들 공부 안 시키고 뭐 하고 있었어? 저 성적 가지고 어떻게 할 거야? 제 인생 망치면 당신 책임이야"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 때문에 욕먹는 어머니도 불쌍했지만, 솔직히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너무너무 바쁘셔서 지난 12년간 나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1도 관심 없으셨는데, 지금 와서 내 성적에 대해 왈가왈부하시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았다. 그 당시 아버지들이 그러셨듯이, 나의 아버지도 돈 벌러 매일 새벽에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시고 주말에는 잠만 주무셨기에, 아들 신경 쓰실 시간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없으셨다.



대기업 만년 과장으로 일하다가 난 의원면직을 하고 얼마 전부터 집에서 살림을 살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요리를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많이 해주었다. 돈가스, 닭튀김, 라면사리 넣은 부대찌개 등등..... 그런데, 오늘 아침에 와이프가 출근 전 내게 흘러가는 말로 "요즘 기름진 것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애들 얼굴에 여드름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느꼈다. '아, 아이들 여드름이 요즘 나의 방만한 요리 때문인 거구나' 그리고 나선 내 얼굴이 화끈 거렸다.


부부가 결혼하고 나면 여러 가지 이슈로 싸우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빈번한 싸움이 아이들 교육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거다. 예전에 아버지가 내가 시험 망친 것을 어머니에게 책임 전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먼 훗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내신 등급이 나오기 시작하면, 아이들 등급에 대한 책임을 살림사는 나에게 물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물론 나의 아내는 무지무지 착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게 책임을 물을 것 같지는 않지만, 처갓집에서의 비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제나 세상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니깐!


아이들이 고등학교 가서 공부를 엄청 잘하게 될때는 그 모든 것이 나의 공로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내는 학창시절 내내 전교에서 놀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못할 시 나의 유전자 책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결혼할 때 장모님은 시도 때도 없이 자기 딸 자랑을 하셨다. 어렸을 때 맨날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느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중신 서달라고 난리였다느니 너무 나도 잘난 따님을 내가 데리고 가서 아쉽다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 같았다. (사실 아내를 만난 것을 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살림 사는 날 버리지 않고 데리고 살아줘, 제발! :) 게다가, 지금은 의원면직하고 집에서 살림 살고 있다. 아내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아시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 사실을 아시기 전에 빨리 난 성공해야한다.  


회사를 나오면 나를 찾아주는 사람도 많고 나의 능력을 알아봐 줄 사람도 많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해외 유학에 MBA까지 마친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밖의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업 시장에 나보다 잘난 사람은 정말 많았다. 요즘에는 입사 지원을 하면 이력서를 기반으로 나의 이력서 점수와 합격자 평균 이력서 점수가 나오는데, 나의 이력서 점수는 합격자 점수보다 300점이나 낮았다. '아, 충격이다.' 요즘에 취업을 하려면 인턴, 봉사, 학점, 자격증, 어학 등등 모든 분야에서 만점을 받아야 취업이 되는 모양이다. 아니 이건 그냥 기본에 기본인 것 같다.


난 정말 좋은 시기에 태어나서 경쟁이 심하지 않을 때 쉽게 취업한 것임을 깨달았고, 지난 15년간 대기업이라는 온실 안에서 온갖 비바람과 추위를 못 느끼고 살았던 것임을 알았다. 회사에서 받던 월급이 정말 큰 금액이라는 것을 회사를 나오고 창업 준비와 구직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와도 난 잘난 놈이니깐 월 500만 원은 거뜬히 벌거란 막연한 생각을 하고 나왔는데,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회사 밖 현실은 전쟁터였다. 중소기업에선 큰 돈에 익숙해진 대기업 화초라서 일 시키기 부담된다며 채용하기 꺼려했고 시급 8,590원짜리 알바를 뽑는 사업주는 내 나이가 많다고 채용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창업 또한 쉽지 않아 보였다. 오프라인 시장은 죽어가고 있고, 온라인 시장은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가격 경쟁으로 뼈 빠지게 일해도 최저시급 이상 벌기가 쉽지 않았다. 온라인 유통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카드 회사, 네이버, 카페 24와 같이 플랫폼을 가진 회사와 리뷰수를 많이 모은 일부 업자들 뿐이었다.  


창업 했다가 있는 퇴직금 마저 까먹을 까봐, 다시 회사라는 조직의 노예가 되기위해 잡코리아와 헤드헌터에 이력서를 올려놓으면 연락 오는 곳이라곤 기획부동산과 보험회사뿐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가리는 것을 보면 아직 배가 부른가 보다

온실 속 화초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일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작가'라는 단어가 주는 우아함에 취해 요즘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학창시절 공부하는 것 말고 책읽기도 글쓰기도 관심이 없던 나인데, 왜 이렇게 푹 빠지게 된 것일까?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남의 시선 따위 생각 안하고 글을 써야하는데, 글에 달리는 댓글이나 통계에 왜이리 연연하는 것일까?  


글쓰기가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쓴 글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공감되는 과정이 정말 좋다. 그리고, 오늘도 그 묘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브런치에 내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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