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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un 27. 2020

#12 퇴사후 찾아 온 욕구 감소

모든 욕구 감퇴한 손주부

오늘 카드값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많이 나와서가 아니라 너무 조금 나와서 깜짝 놀랐다. 요즘 들어서 (아니 원래 그랬을 지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 옛날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나이를 먹어갈 수록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이렇게 감소되어 가는 나의 욕구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1. 성욕 감소

옛날에 결혼하기 전에 광수 생각이라는 만화를 읽은 적이 있다.  아직도 생각 나는 에피소드인데, 성인 남녀가 결혼을 해서 처음 3년간 빈 어항에 부부생활을 할 때마다 종이학을 접어서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4년 차 때부터 관계를 가질 때마다 어항에서 종이학을 한 마리씩 뺐는데, 평생 동안 뺄 수 없었다고 한다. 난 그 당시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라면서 그 부분을 그냥 웃어넘겼는데, 아,,,, 이젠 그 에피소드에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 아내와 밥 먹다가 눈만 맞아도 밥상 엎었는데, 이젠 눈만 맞으면 어색해서 시선을 돌린다. 이런 어색함은 여름에 더 심해진다. 여름에 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자는 방면 아내는 에어컨을 최대로 해서 자야 한다. 서로 잘 때 적정 온도가 다르다 보니 여름엔 불가피하게 아내는 아이들 방에서 자고 난 독거노인 신세가 되었다. 독방 처음 쓸 때는 조금 어색하고 이상했는데, 어느덧 독방에 적응이 되어 넓은 침대를 밤새 몸부림치면서 자게 되었다.  


2. 물욕 감소

회사 다닐 때 난 옷 사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가 멀다 하게 쇼핑을 했다. 택배 아저씨를 얼마나 자주 만났던지, 이젠 택배 아저씨가 길에서 날 보면 인사까지 한다. 월급의 절반은 옷 사는데 썼던 것 같다. 주말이면 쇼핑몰에 갔다. 아이들이 키즈카페에서 놀 동안 옷가게에 가서 맘에 드는 옷을 입고 전신 거울에 온몸을 비쳐 본다. 그리곤 흐뭇해하며, 바로 카드를 들고 결제하러 간다. 한창 옷을 사러 당길 때는 월급의 대부분을 옷 구매에 썼다. 양복도 기성양복이 아니라 전문 테일러를 통해 꼭 맞춰서 입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로 놀림을 많이 받아,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이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옷을 사 입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옷을 사는 게 예전처럼 즐겁지 않게 되었다. 물론 새 옷을 사면 그 순간 기분은 좋겠지만, 얼마 안 가서 싫증 날 거란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다.


3. 인정 욕구 감소

학창 시절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40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내 얼굴을 유심히 보시더니 넌 진짜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슨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날 걱정해줘서 한 말이 아니라 뭔가 비꼬는 듯한 뉘앙스의 말투였기에, 열심히 해서 그 선생님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선생님 덕분에 공부 성적이 점점 오르더니 고등학교 때는 전교에서 몇 등 하는 아이까지 되었다.


미국에 유학 가서 영어가 딸려서 한창 고생할 때 경제학 교수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넌 이런 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백인 교수였는데, 어찌나 기분 나쁘게 말하던지..... 잘 모르니깐 오피스 아워(질문하는 시간)에 질문하러 온 건데 그런 식으로 무안을 주는 교수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과목은 F를 맞더라도 그 과목만은 A를 받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했다. 덕분에 A가 나왔고, 수업 마지막 날 교수는 커닝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끝까지 기분 나쁘게 하는데 소질이 있는 교수였다.


이렇게 학창 시절 성적이 우수해서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살았는데, 회사에 가니 상황이 바뀌었다. 회사란 곳은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라 다 같이 협력해서 일하는 곳이 었기 때문에, 나만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되었던 학창 시절과는 참 많이 달랐다. 결국, 난 인정받지 못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모시던 상사분들이 좌천당하거나 퇴사하면서, 나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은 이후로 나의 인정 욕구는 많이 없어졌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되었다.


4. 식욕 감소

20대 때 나는 근육질 짐승남이었다. 아니 거짓말이다, 그냥 짐승이었다(돼지였다). 키 178센티에 몸무게가 90킬로에 육박했다. 오랜 미국 유학 생활로 몸이 우람했다. 끼니때마다 햄버거, 피자에 콜라 한잔씩 마시고 입가심으로 브라우니 같은 것을 막 먹었다. 그렇게 5년을 살고 나니 투 턱에 러브 핸들(똥배)까지 생겼다. 그런데 40을 넘기고부터 식욕이 점점 줄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양념 치킨도 소화가 안되어서 몇 조각 못 먹었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면 배가 금방 불러와 500 한잔을 밤새 마셨다. 그렇게 조금 먹다 보니 살은 쭉쭉 빠졌고, 어느덧 소말리아 어린이 버금가는 거미형 체형을 갖게 되었다. 내 키에 62킬로니깐 거의 30킬로가 몇 년 새 빠졌다. 식욕 감소는 최근에 키토식을 하면서 더 심해졌다. 키토식이란 저탄 고지식을 말하는데, 한 달 하고 나니깐 식욕이 더 떨어졌다. 살이 너무 빠지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너무 없어 보인다, 어디 아픈 거 아니냐 등의 걱정을 해주셔서 요즘에는 과분한 걱정이 귀찮아서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는다.


요즘 유일한 욕구는 브런치에 글쓰기다. 숫자 좋아하는 한국 사람 아니랄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통계를 클릭해 오늘은 몇 분이나 오셨는지 확인한다. 다 덧없는 숫자일 뿐인데 이렇게 숫자에 연연하는 것을 보면 내가 참 철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유일한 나의 욕구인지라 이 욕구 마저 사라지면, 머리라도 깎고 법륜스님 찾아가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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