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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un 26. 2020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 있다

첫째가 좋아 둘째가 좋아?

어렸을 때 (유치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친척집을 방문하면 내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XX아, 아빠가 좋니 엄마가 좋니?"


엄마, 아빠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사람 민망하게 고모들은 이런 짖꿎은 질문을 퍼부었다. 그때마다 난 고모에게 되물었다.


"그럼 고모는 할머니가 좋아 할아버지가 좋아?"


아, 지금 생각해도 유치원생의 답변 같지 않다. 곤란한 질문을 바로 반사하는 센스라니! 그렇게 되받아 치고 나면 고모들은 얼굴이 살짝 상기되면서 다른 사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나이를 먹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 둘이 생겼다. 아내와 함께 가족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누가 더 좋은지?'같은 질문을 받지 않게 되었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친척들 간의 왕복도 부쩍 줄어들었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평생 안들을 것 같던 '누가 더 좋아?' 질문이 친구들과 술 먹는 자리에서 나왔다.


"손주부야, 너는 첫째 딸이 좋아 아니면 둘째 딸이 더 좋아?"


이런 질문 정말 싫지만, 난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난 왠지 모르게 둘째가 더 마음이 간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애교를 장착했다. 아마도 태어났을 때 언니를 발견하곤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레 진화한 것 같았다. 태어나자마자 경쟁자가 없었던 첫째는 애교 따위 장착하지 않아도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것을 보면 애교 능력 또한 용불용성의 특성을 지녔음이 틀림없다.  


둘째가 태어나고 기어 다닐 때 즈음 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MBA 과정이다 보니 매일매일 읽어야 할 자료가 많았고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바빴다.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하고 항상 컴퓨터로 공부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곤 했는데, 한창 작업을 하다 보면 둘째가 책상 밑으로 기어 와서 내 다리를 잡고 자기도 책상 위로 올려 달라고 사랑의 눈빛을 발사한다. 말도 못 하는 둘째는 책상 위에 올라와서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씩 웃는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따라 웃으면 녀석은 나를 보고 해맑게 웃으며 물개 박수를 친다.


첫째는 나를 너무나도 닮았다. 성격도 외모도 판박이다. 그리고 성격 중에서 맘에 안 드는 부분을 특히 많이 닮았다. 공부는 일단 싫어하고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한다. 한 군데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거나 집중하지 못한다. 휴대폰을 끼고 살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조절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오면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바라보게 되니, 그 사람이 막연히 싫어진다는 것을. 첫째 딸아이가 무슨 죄가 있는가, 다만 내 유전자를 둘째보다 조금 더 많이 물려받아서 나의 안 좋은 모습이 투영되어 보일 뿐인데 말이다.


딸아이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이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할 터인데, 이게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


글을 쓰는 지금은 둘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둘다 너무 사랑스럽다. 첫째는 배려심이 많아서 좋다. 둘째는 애교가 많고 독립적이어서 좋다. 아니 정정한다. 두 딸들은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자식들이여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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