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 손주부 Mar 15. 2021

선택이 너무 힘든 이유

사회적 증거 (Social Proof)

계절이 바뀌면서 갑자기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냥 만사가 다 귀찮고 손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매일 야근을 했다. 일찍 집에 와서 집안일 좀 도와주면 정말 좋을 텐데, 집에서도 밤늦게 까지 일을 했다. 예전에 지은 죄가 있어서 빨리 집에 오란 소리도 못하겠다. 나는 아내가 살림 살 때 야근과 회식으로 매일 늦게 집에 갔다. 주말에는 피곤하다고 시체처럼 잠만 잤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서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일 년 동안 거의 입지 않던 옷들부터 정리했다. 당근 마켓에 팔기도 하고 옷이 너무 낡은 것은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그렇게 옷을 많이 버렸는데도 남아있는 옷의 개수를 세어보니 정말 많았다. 상의가 30벌, 하의가 30벌이나 되었다. 상의와 하의를 믹스해서 코디하면 900가지 정도의 스타일이 나오는데, 매일 아침 선택 장애에 걸려 항상 입는 옷은 똑같다.


회색 후드티에 바지, 그리고 편한 운동화




선택 장애는 마트에 가서도 생긴다. 월요일은 아이들과 라면을 먹는 날이라 마트에 왔는데, 라면의 종류가 수십 가지는 되는 것 같다. 선택이 힘들 땐 그냥 신라면을 골랐는데, 이제 신라면만 해도 종류가 네 가지나 된다. 신라면, 신라면 블랙, 신라면 건면, 신라면 두부김치.....


라면에 넣어 먹을 계란을 사러가도 선택 장애는 계속된다. 목초란, 유정란, 동물복지란, 무항생제란 등등 달걀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또 고민된다. 마트에 한번 다녀오면 선택 장애 덕분에 한두 시간은 그냥 간다.


선택장애가 오는 이유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으면 어떻하지'란 두려움 때문에 선택이 점점 어려워진다.


작년부터 선택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는 어떤 제품이 더 좋은지 고민할 필요 없이, 리뷰와 별점이 높은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남들이 많이 사는 제품을 구매해서 선택에 따르는 부담과 리스크를 줄인다. 이처럼 선택이나 판단을 할 때 관련 정보가 방대하여,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참조하는 것을 사회적 증거 (Social Proof)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증거 (Social Proof)를 많이 접하며 살고 있다. 필자처럼 많은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쇼핑할 때 판매량과 리뷰수를 보고 구매 결정을 한다.


점심 식사할 곳을 찾을 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사회적 증거)이 왠지 다른 곳 보다 더 맛있을 것 같다.


아내에게 용돈 인상을 요구할 때, 40대 기혼 남자 평균 용돈이 60만 원(사회적 증거)이므로, 좀 더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성공 가능성은 낮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PD와 영상 편집자들은 화면 중간중간에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더빙(사회적 증거)하여,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날아오는 관리비 고지서에는 입주민 평균 전기 사용 현황(사회적 증거)을 보여주어, 전기 절약을 유도한다.


식당 주인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고객들을 위해 가장 잘 팔리는 메뉴 옆에 "BEST"라는 표시(사회적 증거)를 해두어, 선택 장애에 빠진 고객의 선택을 돕는다.


안타깝게도 요즘 일부 기업들은 사회적 증거를 악용하여 판매를 촉진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 업체를 활용하여 가짜 리뷰와 별점을 생성한다. 마케팅 업체들이 제시하는 가짜 리뷰 생성 비용은 리뷰 1,000개에 800만 원 수준이다.   




모든 판단을 사회적 증거에 의존해서 살다 보면, 삶은 편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삶이 없어진다. 남들이 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니 같이 준비를 하고, 남들이 다 들고 싶어 하는 가방이니 사고 싶어 지고, 남들이 다 다니고 싶어 하는 직장이니 적성에 맞지 않아도 참고 다닌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내 삶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면 사회적 증거에 의존해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오늘 배운 경제 용어>


ㄱ. 사회적 증거 : 어떤 행동이나 판단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판단을 따라 하게 되는 성향을 얘기한다.


<참고 문헌>


https://en.wikipedia.org/wiki/Social_proof#:~:text=Social%20proof%20is%20a%20psychological,known%20as%20informational%20social%20influence.

https://zoo6873.tistory.com/237


작가의 이전글 잘 생긴 친구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