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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Jul 11. 2020

우리 집 육아 방식

프랑스식? 북유럽식? 미국식? 한국식?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한지도 벌써 4년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는데, 그간 읽은 육아서적과 육아 경험, 해외 체류 경험을 융합해서 우리 집 만의 육아 방식을 구축했다. 구축 과정은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내와의 토론을 통해 이뤄졌는데, 책을 읽고 서로의 느낌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1. 프랑스식 육아 

2013년에 운이 좋아서 프랑스에서 공부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첫째는 만 4살, 둘째는 만 2살이었다. 한국에서만 아이들을 키우다 해외에서 처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보니 충격적인 일들 투성이었다.


담배 피우면서 유모차 끄는 프랑스 아빠, 엄마 

담배 회사를 다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회사 임원 면접 때 사장님이 "너, 담배 안 피우면 떨어뜨릴 건데, 담배 피울 거냐?" "네, 뽑아주시면 열심히 피우고 망가진 몸은 홍삼으로 건강을 되찾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했고 합격과 동시에 난 담배를 안 피웠다. 일명 먹튀였다. 그만큼 난 담배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웠다. 특히 유모차를 끌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심심찮게 발견했는데, 담배 연기가 유모차 안의 아기에게 갈까 봐 내가 더 조바심이 났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이들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다.


식당에서 만난  프랑스 아이들

프랑스 렌트비는 살인적이어서, 우리는 5평 정도 되는 원룸에서 살았다. 취사 공간은 라면 하나 끓여먹을 수 있게 화구가 하나 있었고, 화장실은 변기 하나와 샤워기 하나가 딱 붙어 있었다. 생활비 아껴보자고 매번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서 먹었는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레스토랑에 가자고 말했다. 원룸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아이들과 함께 가족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가족 한 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반대편 테이블을 잡고 식사 메뉴판을 둘러봤다. 그리고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프랑스 가족도 딸만 둘이었는데, 너무나도 다소곳하게 앉아서 조용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른들과의 대화에도 절대 끼지 않았고 조용히 자기에게 주어진 음식만 쳐다보면서 본인들의 입에 음식을 넣었다. 우리 딸아이들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너무 나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들 또한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마시모두띠 혹은 갭 키즈 화보 모델처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프렌치 시크를 보여줬다. 그에 반해 우리 아이들은 핫핑크 원피스에 스파클링 뿌려진 깃털 나비 날개를 달고 치링 치링 치리링 소리 나는 요술봉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우리 두 딸들도 나름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단, 아이패드 2대는 우리 부부의 조용한 식사를 위해 필수품이었다.

 

우연히 프랑스 가족의 아이들 얼굴을 보았는데, 표정이 어둡고 측은해 보였다. 저 나이 때면 분명 공주스럽고 핑크색으로 도배된 드레스를 입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들의 육아방식이 궁금해서 자료를 좀 찾아봤다. 여러 자료를 읽어본 결과 프랑스 육아의 핵심은 욕구 지연 및 좌절 경험시키기였다.

 

한국은 정반대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아이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이 울면 바로 젖을 물렸다. (욕구를 바로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아무리 울어도 정해진 시간에만 젖을 먹을 수 있다. 말귀를 알아먹는 나이가 되면 오후 8시 전에 자기 방에 가서 취침을 해야 한다. 밤늦게 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 한국 아이들과는 참 다르다.


2. 북유럽식 육아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호텔이 아닌 가정집에서 지내며, 그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체험했다. 12월에서부터 1월까지 체류했었는데, 그 추운 겨울에 우리 가족은 놀이터와 어린이 전용 박물관 도장 깨기 놀이를 했다. 도시에 있는 놀이터 혹은 박물관을 매일 한 군데씩 찾아갔다.


아이들이 어떻게 놀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모

북유럽에 있는 놀이터들은 한국 놀이터와는 달리 위험해 보이는 것들이 참 많았다. 어린 시절 높은 곳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골절상을 입은 경험이 있던 나는 딸아이들이 다칠까 봐 졸졸졸 쫓아다녔다. 북유럽 부모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해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바이킹들의 후손들이라 그런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게 계부, 계모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육아에 있어 북유럽 사람들의 핵심 가치는 신뢰다.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는 우리나라 부모와는 달리 북유럽 사람들은 어린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고 그들을 신뢰했다. 잘 생각해 보면 간섭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못 믿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불신을 받아온 사람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자기가 하는 일에 믿음을 가지고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신뢰를 바탕에 둔 학습법에 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조금이라도 뒤쳐질까 봐 영어학원을 유치원 혹은 더 어릴 때부터 보내고, 선행학습을 시킨다.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수업시간에 수업 진행이 힘들다고 담임 선생님이 면담 중에 말씀하셨으니, 일반화의 오류는 아닌 듯하다.

 

북유럽에 가서 가장 놀랐던 사실 중에 하나는 첫 번째로 숙제가 없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로 학원도 다니지 않는데 세 번째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점이었다. 거리에서 청소를 하시는 할아버지부터 편의점에서 물건을 채우시는 아르바이트생까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서 깜짝 놀랐다. 영어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 외에도 다른 언어를 추가로 구사할 수 있었다.

 

북유럽에서는 아이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아이들을 신뢰했고 지지해 주었다. 그런 신뢰를 받은 아이들은 그 신뢰에 따라 잘 자라준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부모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스쳐간다. '나중에 경쟁에 뒤쳐져 삼류 인생을 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불안해하며 학기 초가 되면 타이트한 학원 스케줄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과자, 삼각 김밥 같은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남들이 모두 그렇게 살고 있으니 원래 이렇게 사는 건가 하고 문제의식 없이 오늘도 또 이렇게 살아간다.

 

3. 우리 집 육아 방식 

 우리 집은 프랑스식, 한국식, 북유럽식이 짬뽕이 된 방식이다. 성공적인 육아 방식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단다. 주변 친구들의 살인적인 학원 스케줄을 보면서 감사해한다.

 

개인 인격체로 존중 (북유럽식)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아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봤고, 학교 수업이나 진도, 학원에 관해서 개인의 의견을 존중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영어가 부족해서 영어 학원 필요성을 느끼면 학원을 신청해 달라는 식이다.


요즘 첫째 딸아이가 승무원이 되고 싶다면서 어떠한 자질이 필요한지 물어봤다.  서비스 마인드, 외국어 실력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해줬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서 영어 공부가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규율 준수 (프랑스식)

아이들의 행동에 별 제재를 가하는 편이 아니지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예절은 강조하는 편이다. 이웃 어른들을 만났을 때는 모르는 분이더라도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할 때면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하고 감사 인사를 한다. 식사 후에는 자기가 먹은 그릇을 치우고 자기 자리를 행주로 닦는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이 정도까지 하고 있는데, 나중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 집안일도 시킬 생각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엄마 아빠가 있잖니 (한국식)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 받은 문화 충격 중에 하나가, 부모가 얼마나 부자이건 간에 그것은 나와 상관없다는 친구들의 말이었다. 의사 집안의 한 미국 친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기숙사비 낼 돈이 부족하다며 차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하필, 의사 집안의 한국 친구도 유학을 왔었는데, 입학하자마자 부모님 돈으로 고급 세단을 뽑고 오프 캠퍼스에서 의리의리 한 집을 렌트해서 혼자 살았다. 어느 쪽이 더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부모 아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친구가 참 신기했다.

 

아내와 난 미국식까지 가긴 어려울 것 같다. 딸아이들이 대학교 등록금이 없어서 차에서 노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울컥할 것 같다. 노숙을 내가 하면 했지 딸아이들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은 것을 보면 아내와 나는 천상 한국식 부모다.

   

그래서 오늘도 2시간 넘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만 보는 딸아이들을 굳게 믿으며,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을 품고 사랑의 눈초리 빔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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