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부 Jun 11. 2021

주식하기 전 알아야할 달러의 역사

학창 시절에 역사를 굉장히 싫어했다. 역사 선생님이 당구 큐대로 체벌을 일삼는 50대 아저씨(게다가 소갈머리)인 까닭도 있지만, 시험에 나온 문제가 너무 맘에 들지 않았다. 시험 문제는 연도 암기 시험이었다. 사건의 발생 원인과 배경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건 발생 연도를 물었다. 노란색 형광펜으로 연도만 줄 쳐놓고 숫자를 외우는 게 싫었다.      


어른이 되고 난 지금은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를 알면 현재의 사건을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토대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 보는 일은 재미있다.       


이번 시간엔 달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달러의 역사를 알면, 경제 지식도 늘고 재테크를 함에 있어서 필요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기 전에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다. 기축통화는 국제 거래 시 사용되는 통화를 말한다. 기축통화국이 되면 시뇨리지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놓지 않으려 하고 중국은 기축통화국으로 도약하려 한다.


기축통화국이 되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여야 하고 해당 국가가 화폐 가치를 보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국은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재정 지출을 너무 많이 했다. 재정이 파탄 난 나라는 화폐 가치 보증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기축통화국이 될 수 없다.          


영국 다음으로 엄청난 힘을 갖게 된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오랜 세계 대전으로 유럽과 아시아는 쑥대밭이 되었는데,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피해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은 전쟁 물자를 유럽에 공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요즘 물건의 대부분이 Made in China인 것처럼, 당시 대부분의 물건들은 Made in USA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전 세계 금의 72%가 미국에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세계 최강국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 되기 위해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전 세계 44개국 재무장관들을 미국 브렌트 우즈에 모이게 했다. 향후 세계 경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기로 표면적으로 말했지만, 근본적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공식적으로 기축통화가 되었음을 표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44개국 대표들은 환율 안정과 국제 무역 활성화를 위해 금 1온스에 35달러로 고정하는 고정환율제 시행에 합의했다. 그 외 다른 화폐는 달러에 고정시켰으며, 각국이 가지고 있던 금은 미국이 일괄적으로 보관하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달러 지폐에는 "달러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줄게"란 내용이 쓰여있다. (하지만, 지금은 달러를 가져오면 금을 준다는 내용은 쏙 빠지고 “In God we trust”라고만 쓰여있다. 마치 미국 오빠가 "손만 잡고 잘게, 오빠 믿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1944년부터 달러는 공식적으로 금과 교환할 수 있는 태환화폐가 되었다. 금을 평소 들고 다니기는 불편하고 보관도 어려우니, 미국이 대신 보관해주고 국제 거래 시 달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브레튼 우즈 합의 이후로 전 세계 무역 거래가 활발해졌고, 세계는 전쟁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일본은 미국의 차관을 받아 빠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유럽과 일본이 성장하기 시작하자 미국 제품이 외면받기 시작했다. 전쟁 중에는 미국산 제품밖에 없으니, 미국 제품이 잘 팔렸다. 전쟁 후 질 좋고 값싼 유럽, 일본산 제품이 팔리니, 미국산 제품은 파리 날리기 시작했다. 즉,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점차 악화되어갔다.     


변동 환율제 하에서는 무역수지 적자가 심해지면 자국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화폐가 평가절하되면 수출 제품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수출이 증가하고 자연스레 무역 수지가 개선된다. 하지만, 고정 환율제 하에서는 아무리 무역 적자가 심해지더라도 화폐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역수지가 개선되지 않는다. 즉, 미국의 적자가 심해졌지만, 고정환율제였기 때문에 무역수지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재정적자도 심해졌다. 전 세계 공산화를 막기 위해 한국과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다 보니 정부의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졌다. 원칙 상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달러를 찍어내야 하는데, 돈이 많이 필요해지다 보니 미국은 다른 국가들 몰래 달러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미국을 못 믿겠으니 금으로 돌려달라고 했다. 프랑스가 금을 찾아가는 것을 본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 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즉, 미국을 대상으로 다른 국가들의 뱅크런이 시작된 것이었다. 미국은 기존 약속도 있으니, 처음에는 금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미국 안에 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고, 결국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어마어마한 발표를 한다.       


“앞으로 달러를 금으로 안 바꿔줄 거야, 배 째!” (이를 닉슨 쇼크라고 말한다.)


손만 잡고 자겠다는 미국 오빠는 약속을 깨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은 대놓고 달러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닉슨의 발표 다음 날 달러화 가치는 폭락했고, 주식 시장은 폭등했다. 달러화 가치의 하락은 미국 제품의 가격이 떨어졌음을 의미하고, 향후 수출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쇄적으로 달러화가 추락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미국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금은 달러와 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져서, 달러가 종이 조가리 취급을 받게 될 예정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다른 물건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으면 달러의 인기는 지속될 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을 제외하고 제일 중요한 물건은 바로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석유였다. 1973년 11월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달러와 석유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사우디 왕조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형님 요새 반정부 세력들의 암살 위협으로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사우디 왕조를 지켜드릴 테니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그게 뭔데?”     

“앞으로 석유를 팔 때, 무조건 달러로만 받아 주십시오.”

      

이렇게 미국은 달러와 석유를 연결시키면서, 달러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 미국은 페트로 달러 체제를 통해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러가 금태환 화폐에서 페트로 달러로 전환되었고, 미국은 석유 매장량만큼이나 많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다.      


1973년부터 페트로 달러 체제가 구축되자 전 세계 유동성은 대폭 증가했고, 증가된 유동성만큼이나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일쇼크가 발생했고 고유가는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켰다.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초에 인플레이션이 30%에 육박했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금리를 인상하여 시중에 유통 중인 돈을 다시 빨아들이는 것인데, 금리 인상에 따르는 부작용은 굉장히 크다.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금 상환 부담이 늘어서 부도나는 사업체가 증가하고 실업자가 증가한다. 실업자 증가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면,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된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너무 오르자 폴 볼커 연준 의장은 과감하게 21%까지 금리를 인상시켰다. 예상대로 물가는 안정화되었지만, 미국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도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당시 금리인상으로 망한 회사가 워낙 많아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신변 보호를 위해 총을 항상 소지했다고 한다.        


80년대 초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제조업은 붕괴되었고, 금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어부지리로 일본의 제조업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은 자기들보다 잘 나갈 것 같은 국가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지금의 중국이 호되게 당하고 있듯 일본도 본때를 보여준다. 당시 미국 내 반일 감정은 엄청났고, 미국의 일자리를 일본이 모두 뺏어갔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당시 잘 나가던 일본과 서독의 재무장관을 미국 플라자 호텔에 불러서 협의라기보다 통보에 가까운 말을 전한다.      


“일본, 서독아! 너희들이 우리 일자리 다 뺏어가서 우리 미국 사람들 다 죽게 생겼다. 이제부터 너희들 화폐 가치 대폭으로 올려! 알았지? 내 말대로 안 하면 혼난다!”

      

일본과 서독은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를 올렸다. 예컨대 1달러에 200엔 하던 것을 100엔으로 조정한 것이다. 화폐 가치가 오르면, 일본 수출 제품들의 가격이 인상된다. 200엔짜리 볼펜을 만들면, 예전에는 1달러에 팔 수 있었지만, 엔화 가치가 오르면 2달러에 팔아야 한다. 가격이 두배로 오르니 소비자들은 더 이상 일본 볼펜을 사지 않게 된다.      


이처럼 플라자 합의(협박) 때문에 일본의 모든 수출 제품 가격이 인상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다. 수출이 막히자 일본은 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고, 일본 국민과 기업들은 싸게 구한 돈으로 기업 발전에 쓴 것이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한창 버블이 심할 때는 도쿄 부동산의 가치가 미국 전체 부동산 가치보다 높았다고 한다.


일본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면서 서로 경쟁 관계에 있던 우리나라 제품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전 세계 판매가 급증하게 된다. 이것을 어부지리라고나 할까?      


요즘 제조업으로 제일 잘 나가는 중국도 미국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 미국은 위안화 가치를 올리라고 지속적으로 협박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인상되고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나라가 혜택을 받게 된다.


미국은 친한 나라들과 합심하여서, 중국 기업들을 보이콧하기 시작했다. 5G 장비 세계 1위 기업은 중국의 화웨이인데, 미국은 주변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엄포했다. 덕분에 한국은 미국과 친한 여러 나라들에게 화웨이 대신 5G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시사점 : 현재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지속될 것인가?>


최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 금리가 오를지 조마조마해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주식에 있던 자금들이 안전한 자산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주가는 폭락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극단적으로 금리를 21%까지 올렸는데 이번 인플레이션에도 금리를 대폭 올릴 것인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 자동화

인플레이션이 유지되려면, 수요가 지속적으로 받쳐줘야 한다. 수요 증대를 위해 미국 정부가 사상 최대 부양책을 꺼내 들었지만, 매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엔 부담이 된다. 정부 부채 증가로 정부 수요 증대가 어려우면 가계 수요라도 받쳐주면 좋은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체험하고 있다. 무인 공장, 무인 자동차,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계산대, 이젠 면접도 AI가 한다. 몇 년 전 중국에 설립된 현대자동차 공장 라인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미국의 아마존은 무인 로봇 배송을 시작했다. 일자리가 없으면, 쓸 돈이 적으니 소비가 어렵고, 수요가 줄면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기 힘들다.

      

2. 노령화

1980년대 인구는 젊었다. 젊은이들은 역동적이다.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즉, 돈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필자도 아직 젊지만, 나이가 들수록 물욕이 점점 사라졌다.


지금 세계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3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려 노후 준비를 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와 소비의 끝판왕인 미국에서도 얼마 전부터 저축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3. 노동조합

1980년대는 인플레이션만큼 임금도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강력한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바탕으로 임금인상을 실현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야기가 다르다. IMF를 겪은 이후 우리나라엔 비정규직이 증가했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증가했다. (기업이 사람을 해고하기가 쉬워졌다.)


요즘 유행하는 경제 이론 중에 현대 화폐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완전 고용이 이루어질 때까지 정부가 계속해서 지출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완전 고용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오면, 세입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이론인데, 현재 집권하고 있는 민주당(미국)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신봉되는 경제 이론이다.


적정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받춰주어야 하는데,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현 상황으로 보았을 때는 가계보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주식 시장 거품을 확인하는 2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