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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Aug 15. 2021

인어공주가 태어나기 전 있었던 이야기

우술라 이야기

바닷속 인어 왕국 아틀란티카의 왕인 트라이톤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 트라이톤은 홀로 남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오전에는 백성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둘러보았고, 오후에는 좀 더 나은 왕국을 만들기 위해 신하들과 토론을 했다. 그런 생활이 10년간 지속되었다. 천성이 탐험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해서 마음은 항상 왕국 밖을 향해 있었지만,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국정만 생각하며 살았다. ‘아, 인어 왕국을 떠나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하며 살고 싶다. 저 깊은 바닷속 심해 왕국에는 누가 살 고 있을 까? 바다 위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곳 일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성을 몰래 빠져나와 무작정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갔다. 한 시간 정도 헤엄쳐 들어가자 빛이 없는 어둠에 둘러싸였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려고 뒤를 돌았는데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은은한 빛을 받아 긴 머리카락이 반짝이고 있었다. 뽀얗고 매끈한 피부는 보석처럼 빛났다. ‘아,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예쁜 인어는 처음이야.’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인어가 아닌 심해 왕국 여자였다. 그녀는 꼬리 대신 여러 개의 다리가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인어 왕국에서 온 트라이톤이라고 합니다.” 수줍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심해 왕국에 사는 우술라라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당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정신을 놓았습니다.”

“아, 그래요? 부끄럽네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트라이톤님도 잘 생기셨어요” 그들은 첫 만남과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 그는 밤마다 성을 몰래 빠져나와 그녀를 만났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 행복했다. 그녀와 함께 왕국을 벗어나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도 처음 보았다. 둘은 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했고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밤에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는 우술라가 세상 어떤 것 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트라이톤은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평생 그녀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날도 평소처럼 데이트를 하고 새벽 무렵 성에 몰래 들어갔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불이 켜졌다.

“너, 지금 어디 갔다가 오는 거니?” 트라이톤의 어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냥 너무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왔어요.”

“너, 지금 내게 거짓말할 거니? 어디 갔다 왔는지 이실직고하지 못해?”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왕이라는 부담감에 그간 너무 힘들었고, 심해 왕국에 가다 우연히 그녀를 만났으며, 현재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니? 너는 결혼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이웃 왕국의 아테나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어머니, 저는 아테나가 아니라 우술라를 사랑해요. 그녀와 같이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요. 이번만큼은 아들의 행복을 빌어주시면 안 될까요”

“너는 내 아들이기에 앞서 인어 왕국의 왕이야! 제발 좀 정신 차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저주받은 심해 왕국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거니? 날이 밝으면 가서 당장 헤어지자고 말해!” 그는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다음날 우술라를 찾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 그만 만나요.” 우술라가 깜짝 놀라 말했다.

“네? 무슨 말이에요 그게?”

“자세한 건 묻지 말아요. 그냥 그렇게 알아요. 돌아갈게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한 달 뒤 트라이톤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이웃 왕국의 공주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간 행복했던 시간들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지나갔다. ‘사랑한다’고 내 귀에 속삭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우술라는 그 이후로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심해 왕국을 떠나 각 왕국에서 버림받은 마녀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


트라이톤은 결혼 후 가끔 그녀 생각이 났지만, 딸아이들이 하나둘씩 태어나자 자연스레 그녀를 잊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딸 일곱 명의 아빠가 되었다. 왕국을 통치할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왕이었지만, 딸들 앞에서는 천상 딸 바보였다. 특히, 막내딸 아리엘에게는 꼼짝도 못 했다. 아리엘은 아빠를 닮아 호기심이 많고 탐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엄격한 아빠 때문에 인어 왕국 밖으로 마음껏 나갈 순 없었다. 아리엘은 인간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들처럼 파티를 하고 두 다리로 신나게 춤을 추고 싶었다. 어느 날 아리엘은 몰래 인어 왕국을 빠져나와 수면 위로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배 위에 있는 에릭 왕자를 보게 되었다. 조각처럼 잘생긴 그는 갑판에서 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리엘은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아, 정말 잘 생겼다!’ 그날 이후 아리엘은 매일 밤 에릭을 보러 몰래 왕국을 빠져나갔다. 어느 날 에릭은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느끼고 소리쳤다.

“저기요! 거기 누구 있어요?”

아리엘은 깜짝 놀라서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에릭은 누군가 물에 빠진 것으로 착각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리엘은 에릭이 물에 빠진 줄 알고 그를 구하기 위해 그에게 헤엄쳐갔다. 에릭은 아리엘을 보고 깜짝 놀라 수면 위로 나왔다. ‘아니, 내가 방금 인어를 본 건가?’ 숨을 깊게 마신 후 다시 잠수해서 눈을 떠보니 아름다운 인어가 자기 앞에 있었다.

“아름다운 인어님! 물 위로 올라와 봐요. 저는 에릭 왕자라고 해요.” 아리엘도 주저하다 용기를 내어 물 밖으로 나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엘이라고 해요. 인어 왕국에서 왔어요.” 그날 이후 둘은 매일 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수영을 하며 아리엘은 바닷속 아름다운 물고기들을 소개해 주었고, 에릭은 아리엘을 해변으로 데려가 아름다운 황금빛 노을과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여주었다. 둘은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에릭의 어머니가 식사 중에 말했다.

“에릭! 너와 약혼한 이웃나라 공주가 오늘 방문한단다. 빨리 공주를 맞을 채비를 해!” 에릭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머니,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누군데?”

“인어 왕국에 사는 아리엘 공주라고 합니다.”

“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니? 인어랑 결혼을 하겠다고? 당장 헤어져!”

"하지만, 저는 그녀를 너무 사랑해요!"

"네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이웃 왕국과 결혼을 해야 우리 왕국이 더 잘 살 수 있단 말이야!"

에릭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기소침해진 그는 다음 날 아리엘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당신이 인어라서 만남을 반대하세요.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에릭은 아리엘이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왕자님! 제가 인간이 되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인간이 되면 어머님께서 허락해 주실 거예요.” 아리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아다녔다. 수소문 끝에 우술라라는 바다마녀가 만든 물약을 마시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찾아갔다. “마녀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인간이 되고 싶어요.” 마녀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물약을 주는 대신 조건이 있지. 한 달 안에 그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넌 물방울로 변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아리엘은 마녀가 건 내 준 물약을 마시자 두 다리가 생겼다. 다리가 생길 때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사랑을 위해 참을 수 있었다. 인간이 된 아리엘은 바로 왕자를 만나러 갔다.

“왕자님 저예요. 저도 인간처럼 다리가 생겼어요. 같이 어머님께 승낙받으러 가요.” 둘은 에릭 어머니 방으로 갔다. 방안은 따뜻했지만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리엘이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아리엘이라고 합니다.”

“에릭아, 너는 무슨 생각으로 이 아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니? 이 아이가 인간이 되었다고 허락해 줄 것 같니? 이웃 왕국 공주와 결혼을 해야 이 나라에 평화가 유지된다고. 이웃나라에 파혼을 통보하면 전쟁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너는 생각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에릭과 아리엘은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 방을 나왔다. 에릭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아리엘, 아무래도 우린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리엘은 너무 속상했다. 이제는 인간이 되어 인어 왕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슬픔과 고독이 몰려왔고 그녀는 해변에 홀로 앉아 펑펑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우술라가 다가와 이야기했다.

“내가 말했잖니. 세상에 영원한 사랑 따위는 없다고.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이 독약을 가져가서 잠자고 있는 왕자의 입에 흘려 넣어. 그러면 넌 다시 인어로 변하게 될 거고 인어 왕국에 돌아가 가족들과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우술라는 아리엘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 올랐다. 우슬라는 자신을 대신해 아리엘이 상처 준 남자에게 복수하기를 바랬다. 아리엘은 자신을 버린 에릭 왕자가 너무 야속해서 홧김에 독약을 받아 쥐었다. 왕궁 경비를 피해 왕자가 자고 있는 방으로 몰래 들어가 독약의 뚜껑을 열었다. 곤히 자는 왕자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그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독약을 왕자에게 먹이는 대신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앞으로 함께 할 순 없지만, 그동안 행복했어요.' 독약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자 아리엘은 머리부터 물방울로 변해갔고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우술라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안돼!"



경제 글로만 찾아 뵙다가 뜬금없이 인어공주 이야기를 올려서 깜짝 놀라셨죠? 오늘이 공모전 마지막 날인데 참가 여부를 고민하다가 늦게 나마 올립니다. 살다보니 "해서 후회하는 것"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 낫더라구요. ㅎㅎㅎ (물론 먹는 것은 예외입니다. 먹을 까 말까 고민 되면 안 먹는 것이 낫죠.) 다음 글은 다시 경제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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