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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Jul 21. 2020

9. 마흔에 내려 온 지름신

사도 사도 또 사고 싶다.

논어 위정 편에 보면 마흔 살이 되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 했건만, 뒤늦게 마흔에 명품과 사랑에 빠졌다. 좋아한 명품은 옷, 신발, 가방이였다.


40년간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어려서부터 옷은 사촌 형으로부터 물려받았고, 몇 년 입다가 작아진 옷은 동생이 물려 입었다. 취직을 하기 전까지 돈 주고 옷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조인성처럼 생긴 것도 아니였는데 옷도 거지처럼 입었다. 뛰어난? 패션 센스 덕분에 대학시절 난 여자친구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대학 가면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생긴다는 선생님 말씀은 거짓말임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교 때 한 번은 옷에 신경 쓴다고 상하의를 카키색으로 깔맞춤 했는데, 친구들이 "김정일" 닮았다고 놀리기도 했다. 이런 패션감은 처갓집에 처음 인사드리러 갈 때도 한몫했다.


장모님은 예비사위를 만나기 전에 미국에서 유학한 친구라고 해서 안경 쓰고 수트를 입은 샌님이면 어떻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시골에서 막 상경한 듯한 구수한 모습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장모님 왈,


"자네, 미국 유학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서울로 유학 간 거 아닌가?"


육아휴직 1년이 남았을 때 회사 복직 전에 무엇을 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죽기 전에 한번쯤은 옷을 잘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대로 패션 테러리스트로 평생을 살기엔 나이가 아직 어렸다고 생각했고, 집 근처 교보문고에 가서 옷 잘 입는 방법에 대한 책을 모조리 샀다.


당시 열의가 얼마나 불타올랐던지 패션 서적 20권을 일주일도 안되어서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정말 수많은 스타일과 색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스타일 중에서도 이탈리아 남부 지역 스타일의 남성복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패션을 따라잡기 위해서 이탈리아 남성이 발행한 "레옹"이라는 남성 잡지를 정기 구독했다. 화보 속에 이탈리아 남성들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화보속 그들은 항상 셔츠 단추를 4개씩 풀고 가슴 털을 보여줬다. 금 목걸이를 하고 빨간색 컨버터블 스포츠카에 금발의 미녀들을 태우고 다녔다. (현실 속의 나는 허리띠 4칸씩 풀고 딸아이가 만들어준 플라스틱 비쥬 목걸이를 하고 빨간색 카시트가 장착된 국내산 세단에 흑발의 여자 셋을 태우고 다녔다.)


화보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이탈리아 남성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잡지에 소개되는 옷과 신발, 시계 등은 모두 명품들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5억 원 상당의 스포츠카와 100만 원짜리 신발, 1000만 원짜리 시계에 1000만 원짜리 수트를 입은 그들을 보면서 난 언제쯤 이런 삶을 한번 살아볼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선은 부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부자되는 방법을 찾기위해 서점으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 시중에서 팔리는 자기 계발서와 재테크 관련 베스트셀러는 모조리 사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들 말의 핵심은 이미 부자라고 믿고 행동하면, 결국에는 진짜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Fake it till you make it" 란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Fake it을 하기 위해 아내 몰래 총각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비상금(주식)을 현금화 했다. '오늘부터, 부자처럼 행동할 것이다'를 가슴속에 되뇌면서 말이다. 그리고 카드한도도 신용으로 가능한 최대치로 올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고 난 비장한 마음으로 롯데 백화점 명품관으로 향했다.  


맨 처음 찾아간 매장은 "브리오니"라는 매장이었다. 쇼윈도에 진열된 양복을 보니 정말 화보 속 양복처럼 심장 떨리는 가격이었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화장실을 한번 더 다녀온 후 매장을 들어가려 하는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이 천만 원이지, 최저 시급이 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1,000 시간을 일해야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그리고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1,000만 원은 맛있는 짜장면 2,000 그릇에 해당하는 돈이고, 돈 아낀다고 서점에서 서서 보던 책을 700권 가까이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요즘 최애 하는 깐풍 새우깡을 매일 한 봉지씩 27년간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짜장면 2,000그릇, 책 700권, 그리고 깐풍 새우깡 10,000 봉지가 가져다 줄 행복과 1,000만 원짜리 양복이 가져다줄 행복을 비교해 보았다.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30분간 치고받고 싸우던 중에 매장 직원이 인사하러 나왔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말끔하게 올린 포마드 머리에 깔끔하게 몸에 딱 떨어지는 양복을 입고 있던 영업사원의 기에 눌려 난 그냥 구경하러 왔다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기왕 들어온 김에 그냥 나가기 미안해서, 가장 저렴해 보이는 넥타이를 집었는데, 가격표를 보고 바로 내려놓았다. 평소 내가 매던 넥타이 70개 값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찾는 스타일이 여기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고 후다닥 매장을 나왔다. 매장을 나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찌질하게 살 거야?'


지금 삶이 딱히 불행한 건 아닌데, 갑자기 욱하는 느낌이 들었고, 홧김 비슷하게 "라르디니"라는 다른 이탈리아 남성복 매장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재킷과 바지, 구두가 담긴 쇼핑백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40년간 날 지배했던 절약신은 지름신에게 강금 당했고 40년간 억눌러 온 쇼핑 욕구를 마음껏 분출시켰다.


지름신이 강림한지도 어언 1년이 흘렀고 명품을 사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일단 명품을 사면 기분은 좋은데, 이 좋은 기분이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 산 명품이 지겨워지면 또 다른 제품을 사야 했다. 갈증이 나서 바닷물을 마셨더니 더 갈증이 나는 악순환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명품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회사에서 해야했다. 며칠 가지 못할 기쁨을 위해 한달간 내 몸의 자유를 회사에 바치는 일이 한심해 보였다.


지금은 퇴사를 해서 반 강제적으로 지름신을 감옥에 처박아 놓은 상태다. 가지고 있던 비상금을 모조리 다 써서 당분간 지름신이 탈옥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명품 살 돈은 이제 없지만, 남들 열심히 일할 시간에 침대에 누워 책읽다가 영감 떠오르면 이렇게 브런치에 글쓰는 일도 참 좋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브런치에 올린 글이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아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돈도 많이 벌면 다시 지름신이 탈옥에 성공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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