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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Jul 26. 2020

#18 너 회사 관둔 이유가 로또지?

부자의 기준

내가 사표를 내고 나니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한결같았다. "너 로또 맞은 거 맞지?" 로또를 맞지 않고서야 사표를 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었다. 혹은 "아버지가 알고 보니 거부였더라"하는 소문이 돌았다. 그들이 물어보면 난 대답한다. "응, 나 로또 맞은 거 맞고 우리 아버지도 엄청난 부자야." 뭐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내가 가진 돈이 부자가 아닐 수 있지만, 내 기준에서 난 부자라고 생각한다. 부는 어차피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직전 내가 일하던 곳은 러시아 모스크바시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브닌스크라는 도시였다. 평균 임금이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되고 집값이 5천만 원 정도 되는 시골 동네였다. 물가가 너무 저렴해서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우리 가족은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고기가 100g이 아닌 1Kg에 만원 정도 하고, 내가 최애 하는 과일인 수박이 5천 원도 안 했다. 2천 원이면 감자를 검은색 비닐봉지에 꽉꽉 채워줬다. 일반 식당에서 전체요리, 메인, 후식, 음료까지 먹어도 5천 원을 안 넘었고 오랜만에 기분을 낸다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일인당 만원 정도면 충분했다.


러시아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새로 입사한 회계 직원이 내게 서류를 들고 오더니 질문했다.

손주부, 여기 당신 월급이 잘못된 것 같아. '0'이 하나 더 붙은 것 같아.

    

대부분의 러시아 직원들의 월급이 30만 원이었는데 나 혼자 너무 높아서 착오가 났다고 내게 가져온 것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 회계사에게 잘못된 숫자가 아니라고 말하니 그녀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똑같이 대학교 졸업해서 똑같이 회사에 취직했으며, 똑같이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데 누구는 30만 원을 받고 누구는 10배가 훌쩍 넘는 금액을 받으니 얼마나 허탈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운 좋게 러시아가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서 대학교육까지 잘 받고 여기서 이렇게 호위 호식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5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이 5억 원에 근접했다고 한다. 이 돈이면 러시아 오브닌스크 시에서 집 열 채를 사서 임대 사업하면서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다. 연간 수익률이 15~20% 정도 되니깐 5억 원이면 매년 1억이란 돈이 나온다. 러시아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정말 슈퍼 부자다. 그런데도 난 내가 얼마나 잘 사는 사람인지 종종 까먹고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다른 슈퍼부자들과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부러워한다.


최근에 집주인도 전세금 올려달라고 성화다. 본인도 전세로 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전세금을 1억 넘게 올려줘서 본인도 나한테서 1억 넘게 올려 받아야겠단다. 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집주인 아주머니의 심정은 십분 이해하는데, 입주 당시에 전세금은 절대로 안 올릴 테니 제발 재건축할 때까지만 살아달라고 부탁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조금 씁쓸했다.  


도시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이 참에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자고 가족들에게 말했는데, 딸들이 시골에는 벌레가 많아서 안된다며 결사반대다! 시골에 가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교보문고도 없고 자라 매장도 없고 예쁜 카페도 없어서 시골은 절대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캬, 내가 뿌린 씨앗에서 나온 놈들이라 뭐라 할 말은 없고 참 거시기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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