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쇼핑 시 주의사항 3가지
대접받으면서 쇼핑하는 방법
러시아는 겨울이 길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쇼핑몰로 향한다. 그래서 러시아에는 하남 스타필드처럼 거대한 쇼핑몰이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쇼핑몰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주말마다 새로운 쇼핑몰을 방문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과였다. 과거 쇼핑몰이 없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러시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루 종일 방구석에 박혀 보드카 마시며 독서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러시아에 위대한 음악가나 대문호가 많은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다.
하루는 가족들과 집 근처 공원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놀다가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 정문에 마련된 발판에 신발을 털고 나서 쇼핑몰로 들어갔다. 추운 밖에서 놀다가 실내로 들어가다 보니 안경이 뿌옇게 변해서 안경을 벗고 아이들 옷가게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아이들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의 옷(핑크색 배경에 빨간색 하트 무늬 패턴의 스웨터)을 찾았다. 한 달간 열심히 배운 러시아어를 활용해서 딸아이 옷 사이즈를 점원에게 요청했는데, 그날따라 점원의 기분이 안 좋았는지 우리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불친절한 것이었다. 버벅대는 러시아어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 가족은 기분이 상해서 그 가게를 나왔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3년간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왜 우리가족이 문전박대를 당했는지 알게되었다.
1. 깨끗한 신발이 아닌 상태로 가게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빈부의 격차가 심한 나라다. 상위 부자 100명이 러시아 전체 소득의 3분의 1을 가져가는 말도 안 되는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소득과는 상관없이 부자처럼 보이려 한다. 추운 겨울에 월급 100만원도 안되는 사람들이 100만원을 훌쩍 넘는 모피코트를 입고 다니는 여성분들이 참 많다. (우리나라 3초백 저리가라다.) 그리고, 가난해 보이는 사람을 은연중에 무시한다. 러시아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지하 주차장이 있는 집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신발이 더러워질 일이 없다. 우리 가족의 더러워진 신발을 보고 가난한 이민자 가족이라고 지레짐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2. 어설픈 러시아어를 구사했다.
러시아에는 수많은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으며, 러시아인 이외에,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과 같이 스탄 국가 출신의 사람들의 수가 굉장히 많다. 그들은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인 3D 업종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동남아 사람들이 그러한 것 처럼 말이다. 스탄 사람들은 대개 러시아어 억양이 어눌하고 외모는 우리나라 사람과 흡사하다. 따라서, 어설픈 러시아어를 우리가 사용하면 스탄 계열 사람으로 오해하고 무시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3. 안경을 쓰지 않고 옷을 너무 편하게 입었다.
2번에서 언급했듯이 러시아 사람들은 스탄 사람들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은 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이 스탄 사람들과 우리를 구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안경 착용 여부와 옷차림이다. 러시아에서 안경 하나를 맞추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5~10만 원 선인데, 모스크바 대졸자 초임 월급이 100만 원 정도인 점을 감안할 시 안경은 굉장히 고가의 물건이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러시아 쇼핑몰에 들어갈 때는 안경을 쓰고 H 마크 크게 박혀있는 벨트를 차고 영어로 대화를 하면 된다. 가게 직원이 영어를 못해도 상관없다. 계속 영어를 쓰면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점원이 와서 응대해준다.
참 씁쓸한 일이지만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백인보다 동남아 사람들을 무의식 중에 하대하고 벤츠 몰고 다니는 운전자에게 더 양보를 하며, 에르메스 버킨백 들고 있는 여자에게서 광채가 느껴진다.
아,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