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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Aug 01. 2020

명품에 빠진 아빠 vs 아이돌에 빠진 딸

부전녀전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했는데 첫째 딸은 이 법칙을 피해 갔다. 어린 시절 나와 아내는 가수나 연예인에 1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숙소가 학교 근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 앞을 심드렁하게 지나갔다. 종종 여학생들이 서태지를 보기 위해 추운 날 주야장천 서있곤 했는데, 그들을 보면서 난 혀를 찼다.

어떻게 키웠길래 딸내미들이 저 모양들일까?


정확히 30년 뒤 그 딸내미가 내 딸내미가 될 줄 몰랐다. 아, 역시 남 욕하면 절대 안 된다. 나중에 벌 받는다. 첫째 딸은 레드벨벳(SM 소속 5인조 걸그룹) 광팬이다. 지금까지 발매된 레드벨벳 음반을 모두 다 모았다. 멤버 중에 아이린을 가장 좋아한다. 하루는 딸과 좀 더 친해지려고 레드벨벳 포스터 카드를 정리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딸아, 레드벨벳 멤버 중에서 아이린을 왜 제일 좋아하는데?"

당연히, 멤버 중에 제일 예쁘니깐 좋아하지!  

'아, 거지 같은 세상, 초등학생부터 외모를 따지니 나처럼 못생긴 사람은 성격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초등학생들도 예쁜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다고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니 뭐 더 할 말은 없다. 하느님이 내게 예쁜 외모는 안 주셨지만 예쁜 성격을 주신 걸로 위로해 본다.


다른 집 딸내미들은 방안을 방탄소년단 포스터로 도배해놨다는데, 우리 집 딸은 레드벨벳으로 도배해놨다. 멤버 5명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딸내미는 각 멤버들의 생일과 취미, 관심사를 줄줄 꿴다. 아, 또 서글퍼진다. 아빠의 취미와 관심사도 이렇게 빠삭하게 알까? 그래도, 남자 아이돌 좋아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위로해본다.   


토요일 아침부터 아이돌 굿즈(기념품)를 사기 위해 딸의 손에 이끌려 청담에 있는 SM Town에 왔다. 토요일 아침은 아이들 온라인 수업도 없어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인데, 난 정말 성격이 예쁜 아빠다. 오늘은 레드벨벳 데뷔 6주년 기념 굿즈를 사기 위해 왔다. 5명의 멤버별로 향초랑 스노볼을 팔았다. 딱 봐도 향초 원가 2천 원, 스노볼 원가 3천 원 토털 5천 원이면 뒤집어쓸 제품에 멤버 이름을 새겨 놓고 7만 5천 원에 팔고 있었다. 이 굿즈를 사기 위해 딸은 몇 달간 금욕 생활을 하며, 용돈을 모았다.


5천 원짜리 물건에 아이돌 이름을 새겨서 7만 5천 원에 파는 SM의 상술에 혀를 찼지만, 순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명품에 빠져 산 나의 딸이 틀림없구나.'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신발과 옷을 남들에게 과시하려 몇 십배나 비싸게 산 사람이나, 아이돌 이름 새겨진 굿즈 사는 딸이나 피차일반이로세!

  

추신 : 저자의 명품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클릭.



https://brunch.co.kr/@iksangson/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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