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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Aug 06. 2020

#21 퇴사하고 처음 간 장례식장

엊그제 친한 동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퇴사하고 처음 참석하는 "회사 지인" 경조사였다. 대개는 발인 전날 저녁에 가서 상주인 친구와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자 했는데, 사람이 붐비는 시간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직장 상사를 만나기도 싫었고 만나서 반갑다는 가면을 쓰고 실실 웃으며 겸상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무슨 일 하면서 지내냐?" 하는 질문에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 대개 "그래서 한 달에 얼마나 버냐?"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고 "아직은 벌이가 없는데, 나중을 기대하면서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3초간의 어색함이 흐르거나 충고를 가장한 사생활 간섭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와 간섭이 너무 싫다.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에 그들의 잣대로 이래라저래라 충고받기 싫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브런치 주소를 묻고 구독부터 하는 것이 순리일텐데 그들은 대개 빨리 다른 직장이라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라며 걱정해주는 척한다.  


동기의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서 3주 전부터는 항암 치료도 받지 않으시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시다 돌아가셨다. 동기가 말했다. "돌아가시기 직전 12시간 동안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


그 말을 듣는 순간 10년 전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죽음을 앞두고 이상한 행동을 계속 보이셨다. "아들아, 숨을 쉬기 너무 힘들어 의사 선생님께 빨리 산소호흡기 좀 달라고 전해줘!"라고 말을 하시다가 갑자기 먼 허공을 보시고 말을 멈추셨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바라보면서 입에 거품을 내실 떼면 엄마의 임종이 다가온 듯 한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엄마의 발바닥을 미친 듯이 지압했다. 발바닥을 지압하면 간혹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밤새 엄마 발바닥을 지압했다.


현실은 드라마와는 달랐고, 엄마의 심장 박동을 표시하던 기기는 굴곡이 점점 없어지더니 평평해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의사 선생님을 찾아 병원 복도를 미친 듯이 뛰었다. 의사 선생님은 매일 겪는 일이라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말씀하셨다. "심폐소생술 진행할까요? 말까요?" "진행하라고 하시면 진행은 하겠지만 시술 도중에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으며, 숨이 다시 돌아오신다고 하더라도 얼마 더 못 사십니다." 세상에 어떤 자식이 엄마의 죽음을 선뜻 선택할 수 있을까, 당연히 심폐 소생술을 요청드렸고 요청과 동시에 의사 선생님 3분과 간호사 선생님 3분이 엄마 침대 주위 커튼을 치고 들어가셨다. 그리고 10분 뒤 고개를 떨구고 나오셨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통해 엄마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세상 어느 때 보다 더 슬프게 곡소리 내면서 울었다. 그때의 처참했던 기분이 동기의 그 말 한마디로 다시금 살아났다.




암세포는 혼자만 살려고 계속해서 번식해 나가는 세포다. 다른 세포와 어울려 살 생각은 하지 않고

나만 살려고 계속 번식만 한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모두 암세포가 정복하게 되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죽고 결과적으로 암세포도 죽게 된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도 암세포 같은 사람이 있었다. 혼자만 인정받으려고 자기가 얻은 업무 지식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차장님이 있었다. 차장님 밑에서 일을 배우던 사람들은 모두 힘들어서 몇 년 못 버티고 퇴사를 했다. 윗분들에게 인정을 받았을지는 모르나, 후임들 사이에서 평판은 좋지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저렇게 사는 사람이 승진도 빨리하고 잘 나갔으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차장님이 관리자가 되고 불만 가득했던 후배 직원들이 같은 부서원이 되자 부서에서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부서는 실적 하락을 거듭하다 해체되었고 실적에 책임을 지고 차장님은 지방 지점으로 좌천되었다. 혼자만 살려고 그렇게 노력하시더니 결국에는 좌천당하시고 이를 못 받아들이던 차장님은 회사를 관두셨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브런치 구독을 해주셨는데 그분의 성함이 차장님과 동일했다. 설마, 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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