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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Aug 06. 2020

#22 칭찬은 아저씨도 춤추게 한다.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는 평생을 아끼면서 사셨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도 있는데 엄마는 정말 아낌의 극을 보여주셨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 단식 치료를 받으실 때에도 교통비 아낀다고 한 여름에 걸어오시다가 길에서 쓰러져 동생이 업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손 씻은 물은 항상 받아 놓으셨다가 변기 내릴 때 쓰셨고, 연필 한 자루 허투르 쓰는 일이 없으셨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도 집착적으로 아끼려고 애썼다. (지금은 아니지만...)


3년 전 육아휴직을 내고 살림을 처음 살게 되었을 때 딸아이랑 너무 많이 싸웠다. 아빠의 음식이 맛이 없으니, 딸은 음식을 먹지 않고 남기려 했고, "음식을 남기는 사람 = 나쁜 어린이"라는 교육을 20년간 받아온 나는 무의식적으로 딸에게 잔소리를 했다. 덕분에 첫째 딸아이와 점점 사이가 멀어졌고, 둘째 딸아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맛없는 음식도 맛있다고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의 요리 인생에 꽃을 피우던 시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 때문이었다. 서울 모 대학교에서 피아노 전공하시던 그 선생님은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하고 계셨다. 어린 시절 자취하면 맨날 라면만 먹던 생각이 들어서 피아노 선생님 레슨이 끝나면 항상 저녁을 드시고 가라고 했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고 아내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피아노 선생님은 막입이었던지, 내가 해주는 음식을 너무나도 잘 먹었다. 우리 애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두 그릇의 신공도 종종 보여주셨고 내 음식에 대해 극찬을 해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책처럼 선생님의 칭찬에 요리하는 게 점점 좋아졌다. "아버님, 진짜 너무 맛있어요! 립서비스가 아니라 완전 제 취저에요!" 딸아이들에게서 들었으면 좋았을 칭찬을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들으니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 선생님 오시는 날 반찬이 과하게 좋아졌다. 이걸 눈치챈 아내가 말했다. "자기, 나보다 피아노 선생님을 더 좋아하는 거 아냐?"


어린 시절 엄마 음식 맛없다고 맨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는데, 엄마의 요리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내가 맨날 불평만 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피아노 레슨은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고, 나의 요리를 칭찬해줄 사람도 없어졌다. 남을 위해 하는 요리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만족과 재미를 위해 요리를 하면 좋을 텐데 아직까지 요리하는 것보다는 남이 해준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게 더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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