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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Aug 08. 2020

아끼면 똥 된다?

마시멜로 이야기

두 딸들은 과자를 너무 좋아한다. 건강을 위해 아내가 과자 섭취를 주 1회로 통제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아니다. 브로콜리 먹기를 주 1회로 통제해도 브로콜리는 여전히 먹기 싫을 것 같다. 브로콜리 섭취는 평생 통제도 가능하다. 그냥 과자가 맛있어서 그런 것 같다. 왜 우리 몸에 안 좋은 것들은 다들 달콤(Sweet)하고 맛있는 걸까? 아내가 Sweet하지 않고 나를 털털하게 대하는 것도 다 남편의 건강을 생각한 것이리라.


첫째는 치킨 맛 과자를 좋아하고 둘째는 감자 스낵을 좋아한다. 둘 다 짭짤한 과자를 좋아한다. 애들 어릴 때 회사일과 육아에 지쳐 종종 캔맥주에 짭짤한 과자를 안주로 먹곤 했는데, 아내 몰래 과자를 조금씩 먹였던 게 머리에 각인되었나 보다.


과자를 사주면 일단 첫째는 그 자리에서 다 먹는다. 참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자신의 본능에 정말 충실하다. 배고프면 일단 바로 먹어야 한다. 배고픔이 길어지면 난폭해진다. 어쩜 그렇게 나를 쏙 빼닮았을까?


둘째는 과자를 사주면 정말 아껴서 먹는다. 너무 아껴서, 유통기한 지난 과자가 집안 구석구석에서 종종 발견된다. 둘째는 사주는 대로 바로 먹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의식 후 과자를 먹는다. 일단 식탁을 깨끗이 치우고 본인이 좋아하는 그릇과 쟁반을 가져온다. 알록달록한 종이 냅킨도 챙긴다. 그리고 예쁘게 플레이팅을 한 다음 과자를 섭취한다. 먹다 남은 과자는 강아지처럼 아빠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 장소에 고이 모셔둔다. 물론 비밀 장소는 아빠가 이미 파악하고 있어 딸아이 몰래 종종 섭취한다. 딸을 너~~~ 무 사랑하는 아버지가 딸의 방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과자를 먹어 없애준다.  


예전에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있었다. 2005년 겨울에 출간되었던 자기 계발서다. 책에 재미있는 실험이 소개되었는데 실험자가 피실험자인 어린 학생들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있으면 돌아왔을 때 마시멜로를 두배로 준다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15분 동안 잘 참았던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2006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아, 맞아 나는 좀 자기 절제력이 필요한 것 같아'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한 내 생각은 2010년 엄마의 죽음을 통해 180도 바뀌었다. 엄마는 마시멜로를 바로 먹지 않고 15분 동안 참는 사람이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평생 참고 참아서 마시멜로를 많이 받았다. 가난한 집 시집와서 사글셋방 전전하다가 서울에 집도 사고 아들 장가도 보냈다. 이제 좀 살만해지니깐 갑자기 말기 위암 선고를 받으시고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엄마의 죽음을 보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마시멜로를 더 받기 위해 평생을 기다렸는데, 마시멜로를 더 받자마자 죽으면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아닌가? 차라리 마시멜로를 바로 먹어버린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더라도 여한이 없지 않을까?


마시멜로 더 받을라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15분이 아니라 15년이나 했다. 앞으로 15년 더 참으면 마시멜로 더 준다고 부장님이 퇴사를 만류했는데, 이제 마시멜로는 되었고 코코아도 마시고 다른 것도 좀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마시멜로 더 받으려고 15년 더 참고 지내다간 내가 먼저 죽을 거 같았다. 그래서 사표를 냈고 새로 찾은 코코아가 내 입에 맞는지 현재 음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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