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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Oct 05. 2020

#38 허리 통증, 글쓰기

얼마 전부터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 가기도 싫고 다른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끙끙 앓고 있었는데, 꾸부정하게 걷다가 가족들에게 들켰다. 가족들의 등살에 밀려 정형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손주부님, 여기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왼쪽 골반이 올라가 있고 척추가 휘어져 있으세요. 이로 인해 척추뼈 주변 근육들이 경직되어 통증이 생기신 거랍니다. 한 달간 도수 치료하면서 경과를 본 후 엑스레이 다시 찍어 볼게요. 아 참 그런데 실손보험은 있으시죠?"

"네? 실손보험 가입은 하지 않았는데요?"

"아, 그럼 어쩌지..... 도수 치료가 회당 21만 원이고 한 달에 12번 받으셔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얼추 계산해 보니 한 달에 250만 원 돈이다. 게다가 도수치료는 짧게는 3개월에서 1년은 받아야 하는데 집에서 주부로 일하는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몇 주간 미용실을 못가 덥수룩해진 머리에 헐렁한 체육복 차림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원래, 회당 한 시간 치료인데 30분만 받으시면 14만 원에 하실 수 있으세요"

'아니, 한시간당 21만 원이면 30분에 10만 5천 원 아닌가? 그리고, 회당 30분만 받아도 되는 치료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신 거지?'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병을 고치기 위한 사람이 아닌 장사꾼처럼 보였다.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에 너무 비싸서 못하겠다는 말은 못 하고 오늘 경험 삼아 한번 도수 치료를 받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도수 치료실로 간호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치료실 안에는 치료사님이 대기하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의료용 침대가 있었고 맨손 운동을 위한 파란 매트가 대형 거울 앞에 깔려 있었다. 흡사 개인 PT를 받으러 온 기분이었다. 마스크에 가려져 나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2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여자분이셨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너무 가냘픈 몸에 치료사로서의 의구심이 들었다.


상상 속의 도수 치료사는 키 180센티의 건장한 남성분이 가을 수확을 앞둔 벼처럼 휘어버린 내 등을 강력한 악력으로 꽂꽂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내 눈 앞의 치료사님은 160센티미터에 40킬로 정도밖에 안 되는 90년대 여가수처럼 생기셨다. 이런 나의 의심 어린 표정을 읽으셨는지 뒤 따라온 의사 선생님께서 부랴부랴 치료사님의 이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다른 병원과 달리 저희 병원은 경험이 많은 팀장급 치료사님만 계시기 때문에 다른 병원보다 도수 치료비가 좀 비싼 편입니다."


얼굴만 보아서는 대학교 막 졸업한 초짜 같은데, 일단 의사 선생님 말씀을 믿어 보기로 했다. 치료사님께서 가운데 침대에 엎드려 누워보라고 말씀하셨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처음 받으시는 치료이니 조금 아플 수 있습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데, 치료사님을 보니 전혀 안 아플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냘펐던 치료사님의 팔은 치료 시작과 동시에 헬스장 중독자인 가수 김종국 씨 팔로 변신하였다. 전완근에 거미줄 같은 핏줄이 나타나더니 30분의 치료 시간을 3시간처럼 느껴지게 해 주셨다. 너무 아파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40대 근엄한 남자라는 체면 때문에 소리도 못 지르고 이빨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찌나 깨물었던지 집에 와서 마스크를 내려보니 입술이 발갛게 변해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점심 빨리 차려달라고 성화다. 병원 갔다가 30분 안에 온다고 했는데 엑스레이 찍고 도수 치료받느라 2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밥 차려 달라고, 배고프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30년 전 엄마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희들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엄마 없으면 너희들이 좀 차려서 먹으면 안 되니? 냉장고에 반찬이랑 밥 전부 있잖니, 너희들이 그냥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되잖아?"

"아니 엄마,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거고, 엄마의 본분은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위해 밥 차리고 청소해 주는 것 아냐? 왜 직무 유기하려고 하지?"


30년 전 지은 죄가 있어 아이들에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에게 오늘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방금 도수 치료를 받고 와서 그런지 온몸이 욱신거려서 도저히 밥을 챙겨줄 기력이 없다. 아이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오늘도 동네 중국집에 주문을 한다. 휴대폰을 꺼내 드는 나를 발견한 눈치 빠른 둘째가 말한다.


"아빠, 나 이제 배달 음식 먹기 싫어 아빠표 김치볶음밥 해주면 안 돼?"

"미안해 딸. 아빠가 지금 요리할 상황이 아니라서, 침대에 좀 더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아."

(토라진 목소리로)"응, 알았어............."




허리가 너무 아파서 글쓰기를 손 놓은 지 꽤 되었다. 매일 쓰고 읽는 습관을 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어느덧 누워서 뒹굴 거리며 유튜브 보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젠 틈틈이 서서 글쓰기 시작했다. 앉아서 글을 쓰면 통증으로 10분도 못 앉아 있기에 서서 글을 쓴다. 오,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한 시간 넘게 서서 글을 쓰고 있는데 다리만 아프지 허리는 안 아프다. 앞으로는 서서 글을 써야겠다.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하루를 보람되게 보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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