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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Oct 06. 2020

#39 내가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

 20살 때 미국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스타벅스를 처음 만났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나는 그곳에 일하는 바리스타 아가씨가 예뻐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생각해보니, 커피는 써서 우유(Steamed milk)를 마시러 갔다. 당시 한약보다 맛없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비싼 돈 주고 그 쓴 물을 마실까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거의 중독자 수준으로 커피를 들이켜고 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바리스타와 나눌 수 있는 대화라고는 "One latte, please." 밖에 없었지만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AFKN에서만 보던 금발 머리의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마치 잡지에서만 보던 히말라야 켈리백을 직접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이야 홍대나 강남에 가면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엄마가 바나나 한송이를 시장에서 사 오는 것만큼 희귀한 일이었다. (당시 바나나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비싼 과일이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 한 친구가 장기 자랑 시간에 비틀즈 노래를 불렀다.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어린 내 눈에 그 녀석이 어찌나 잘나 보이던지 반 여자 아이들의 눈도 하트로 변해갔다. 그놈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여자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리고 어린 맘에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영어를 잘해야 되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영어를 잘하게 된 덕분(?)에 3천 궁녀는 아니지만 3명의 여자와 한집에 살고 있다. 영어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영어 때문에 직장을 얻고 결혼하여 여자 2명을 추가로 만들었으니 영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스타벅스가 있다. 10년 전만 해도 스타벅스는 서울 핵심 상권에만 있는 된장녀 아지트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동네 구석구석 거주하는 길냥이처럼 참 많이도 있다. 이젠 더 이상 바리스타가 예뻐서 스타벅스에 가지는 않는다. 나이를 먹고 남성 호르몬이 감소되면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예쁜 여자 보러 가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따뜻한 침대 안에서 과자 먹는 게 더 좋다. 게다가 이젠 유부남의 몸인지라 바리스타 예쁘다고 스벅 가다 걸리면, 머리털 뽑히고 손목가지 부러진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가 네 군데나 있지만 기억에 남는 바리스타가 없는 것을 보면 그들의 외모 때문에 가는 것은 확실히 아닌 듯하다. 스벅의 커피 맛이 다른 곳 보다 좋아서도 아니다. 과거에는 퇴사하면 치킨집을 차렸지만 요즘에는 퇴사하면 99%가 카페를 차리기 때문에 커피 맛이 상향 평준화된 듯하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 가면 스무 살 때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가서 앉아 있으면 스무 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젊어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마음은 아직도 피가 끓는 20대 청춘이다. 하지만 현실은 허리가 아픈 것을 보니 영락없는 아저씨다.


미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미국의 한 마을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모습과 똑 같이 재현해 놓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초대했다. 실험의 목적은 어르신들을 그곳에서 한 달간 거주하게 한 후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그 촬영장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20대 시절 모습과 똑같았다. 신문을 파는 가판대에는 당시 신문이 진열되어 있었고, 흑백텔레비전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며, 행복한 한 달을 보내셨다.


정확히 한 달 후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를 측정했다. 예상대로 어르신들의 혈압은 낮아지고 혈당 수치가 개선되었으며, 근력이 강화되어 입소 당시 지팡이에 의존하던 분들은 지팡이 없이 걸어 다녔다.    


스타벅스는 나에게 있어 회춘하는 장소다. 그곳에 가면 나는 다시 스무 살의 손주부로 돌아간다. ET처럼 나온 똥배는 들어가고 초콜릿으로 인해 높아진 혈당은 낮아지며, 운동부족으로 줄어든 근육이 다시 생기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곳엔 힙한 스타일의 젊은이들이 많아서 그들의 패션 센스를 흡수하고 젊은 기운을 받아갈 수 있다.


다만, 요즘 들어 나 같은 40대 아저씨들이 스벅에 많이 와서 걱정이다. 아저씨들이 많이 오는 장소가 되면 젊은이들은 물이 흐려졌다며 다른 장소로 떠난다. 그래서, 스타벅스에 갈 때는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20대처럼 옷을 입고 간다. 소위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스타일로 치장한다. 하얀색 스니커즈에 회색 나이키 조거 팬츠를 입고 리바이스 청자켓과 플란넬 체크 셔츠를 안에 레이어드 해서 입고 간다. 여기에 하얀색 블루투스 헤드폰을 목에 걸어주면 금상첨화다. 전신 거울 앞에서 쌩쇼하는 나를 보더니 딸아이가 쯧쯧쯧하는 표정을 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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