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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Oct 04. 2020

#37 강아지 꿈

재물 증가 및 사업이 풀리는 꿈

얼마 전 꿈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가 나왔다. 귀여운 강아지 다섯 마리가 내게 다가오더니 손과 얼굴을 핥아주는 꿈이었다. 행복한 마음이 차오르던 순간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자마자 꿈을 잊어먹기 전에 강아지 꿈이 무슨 의미인지 급히 찾아보았다.

이 꿈은 재물이 증가할 것을 암시하는 꿈으로 현실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나 일들이 아주 잘 풀리는 것을 의미한다.


해몽을 읽자마자 어떠한 식으로 일이 잘 풀리게 될 것인지 행복한 상상을 해보았다. 생각해보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살림살이인데, 살림을 좀 더 잘하게 된다는 뜻인가? 주부 초단에서 구단으로 승단? 눈을 감고 양파를 썰고 로봇청소기처럼 방바닥은 티끌 하나 없이 관리하며, 내 할 일 하면서 아이들 온라인 수업을 완벽하게 도와주게 된다는 뜻인가?


하지만 현실은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서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식사 준비를 몇 주째 손 놓았기 때문이다. 배달앱을 활용하여 짜장면, 치킨, 피자로 끼니를 때우고 있으니, 아이들은 제발 아빠가 직접 요리해 달라며 끼니때마다 시위한다. 그럼 꼰대 아빠는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며, 아빠 어릴 때 짜장면은 연중행사였다고 침 튀기며 이야기한다. '아,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변해가는 내가 싫다.'


이렇게 요리를 하지 않다 보니 용불용설에 의거하여 한 때 물 올랐던 칼질이 점차 퇴화 중이다. 지금 실력으로 눈 감고 양파를 썰다가는 양파보다 손가락을 먼저 썰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 덕분에 우리 집 방바닥은 치워도 치워도 더러워지는 기적을 만들었다. 방바닥 위에 주로 서식하는 여자 세 명의 기나긴 머리카락들은 한 여름 자라나는 잡초처럼 치우기가 무섭게 금세 쑥쑥 나온다. 성경 말씀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최고의 기적인 듯하다. 일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 십상이다. 나는 오늘도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방바닥에 자라난 머리카락들을 억지로 못 본 채 한다. '난, 소중하니깐!'


아니면, 작가로서 잘 풀린다는 뜻인가? 내 글을 출간하고 싶어 하는 출판사에서 제안 메일이라도 보낸 것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열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손주부님 귀하의...............................................................................(설마)................................................................................ 9월 카드 명세서입니다.(역시)"


퇴사하고 나서 나를 찾는 회사는 카드회사 밖에 없다. 회사 다닐 때는 참 인기가 많았는데, 그놈의 인기는 나의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인기였나 보다. 회사의 인기에 속아 내가 잘나 얻은 인기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한숨을 푹 내쉬던 그때 예전에 다니던 회사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주부, 잘 지내? 요즘 글 쓴다며?" (이미, 회사에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응, 그냥 일기 쓰는 수준이지 뭐." (그놈의 일기 쓴다고 책상에 오래 앉았더니 허리 통증이 재발했다.)


"요즘에 애들 학교 안 가서 고생이 많지?" (오, 살림도 안 살면서 어떻게 아는 거지?)


"응. 요즘 허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누워만 있다." (돈도 못 벌어 오는데 집안일도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퇴사한다고 사표를 내고 난 직후 이 친구와 회사 18층 휴게실에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나라 수많은 가장들이 가정을 위해 다니기 싫은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또한 회사가 너무 힘들어 사표내고 싶다고 했다.


"손주부, 정말 부러워. 너는 와이프가 공무원이니깐 와이프 믿고 관둘 수 있는데, 난 외벌이라서 관두지도 못한다."

"응...... 그러게...."


난 그의 푸념을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주었다. 어차피 사표도 던졌겠다 내게 주어지는 일도 없고 인수인계만 하면 되었기에 나 또한 그가 필요할 때마다 휴게실에 가서 그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난 그냥 열심히 들어주었을 뿐인데, 그 친구는 그게 너무 고마웠나 보다. 내게 전화를 하더니 그때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며, 조만간 생일인데, 뭐 갖고 싶은 것이 없느냐고 말한다. 마음만 받겠다고 사양을 하는데 꼭 선물하고 싶다고 한다.


"손주부, 허리가 안 좋은데 책상에 앉아서 글은 써야 하니깐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보내 줄게!"


좀 더 거절하면 친구가 무안해할 것 같아서 "그럼 보내주라, 잘 쓸게"라고 말했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은행 입금 문자를 받았다. '어, 이상하다. 이제 내게 돈 들어올 곳이 없는데 무슨 일이지? 오늘 강아지 꿈을 꾸어서 그런가?' 6월에 입금 문자를 받은 이후로 내 통장에 입금은 없고 출금만 있었기에 누가 보낸 돈인지 궁금했다. 은행 어플을 열고 입금 내역을 확인해 보니 지난 7월에 한 잡지사에 기고한 글에 대한 원고료가 입금되어 있었다.


액수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만원 정도 입금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13만 원이나 입금이 되어 있었다. 글로 처음 번 돈인지라 너무 기뻐서 입금 내역증을 사진으로 찍어서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보여주었다.


"자기야! 나 오늘 기분 최고야! 잡지사로부터 원고료 받았어!"

(힘없는 목소리로) "어, 그래. 잘 되었네."


아내의 대답에 더는 할 말을 잃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이 돈 가지고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아내의 기운 없는 대답에 나 또한 기운이 쭉 빠졌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평소와는 달리 어깨가 축 쳐진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한창 일할 나이에 갑자기 회사 나온 남편 데리고 살라니 가슴이 답답한 걸까? 구직활동은 안 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쓰고만 있는 철없는 남편 때문에 울화통이라도 터진 걸까? 오랜만에 다시 동굴에 들어간 아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동굴 앞에서 삼겹살 구우며 기다리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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