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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Sep 22. 2020

#36 신난다! 등교 개학이다!

신난다 등교 개학이다!


우리 아이들이 외친 소리가 아니라 살림 사는 내가 외친 소리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24시간 같이 생활을 해왔다.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서 좋긴 한데, 가끔은 나만의 시간 (Me Time)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워낙 늦게 자다 보니, 재우고 나면 나도 바로 잠들어 버렸다.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이것저것 알아봤다. 예전에 배우다가 그만둔 가죽공예를 다시 시작해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언어를 배워볼 것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구직자들을 위해 나라에서 제공하는 "국민 배움 카드"라는 것도 만들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강좌를 신청하면 국가에서 수강료를 일부 보전해 주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집이 점점 낡아 가는데, 도배장판 기술이나 배워볼까? 아니면 가방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인터넷에 팔아볼까? 아무튼, 현재 우리는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정부는 재취업 활성화를 위해 여러 재교육 프로그램을 구직자에게 제시하고 수강료를 지원하고 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행복한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 가정 통신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학년별로 주 2회 등교하면 되는데, 딸들의 등교 날짜가 겹치지 않았던 것이다. 첫째는 화, 수 등교하고 둘째는 목, 금 등교였다.


이럴 수가 일이 준 게 아니라 더 늘어버렸다.


아침에 등교하는 딸을 위해 밥 차려주고, 머리 묶어 주고 준비물 챙기다 보면 정신이 없다. (지금은 머리 묶는 것쯤이야 눈감고도 하지만, 처음엔 잘 묶지 못해서, 거지 같은 머리를 한 딸을 보고 담임 선생님이 항상 다시 묶어주셨다.) 학교에 바래다주고 집에 오면 온라인 화상 수업하는 딸을 위해 컴퓨터를 켜고 화상 카메라와 마이크를 연결해 주어야 한다.


오늘은 3학년 딸아이와 같이 화상 수업을 들었다. 수학 수업인데, 두 자릿수 곱셈 계산을 하는 수업이었다. 예컨대 선생님께서 39X47을 한번 풀어보세요 하고 시간을 준 다음 풀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제대로 못 풀면 쪽팔림이 예약된 수업방식이었다. 첫 번째 두 자릿수 곱셈 수업이어서, 난 대부분의 아이들이 푸는데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선생님이 지목한 아이들은 모두 미리 선행 학습이라도 한 것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척척 잘 풀어내었다. 딸아이는 아직 열심히 혼자서 고개를 숙이고 풀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선생님 다 풀었어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딸아이를 시킬까 봐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딸아이의 쪽팔림 방지를 위해 나도 모르게 전자계산기를 꺼내 들고 미리 계산을 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딸아이를 지목하지 않으셨고, 선생님은 문제를 못 푼 친구들은 집에서 복습해 보라고 하셨다.


1980년 대에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지금처럼 선행학습을 하던 친구는 거의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축구를 하고 놀았다. 학원이라 해봤자 남자는 태권도 여자는 피아노 학원 정도였다. 정말, 신경 쓰는 엄마들은 공문 수학 학습지에 주산학원까지 보냈다.


그런데, 요즘 딸아이 친구들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수많은 학원을 다닌다. 하교 시간이 되면 각종 학원 버스들이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교문 앞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렇게 바로 납치된?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내와 나는 공부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면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기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학원은 보내지 않았다. 예전에 영어학원에 한번 보냈다가 딸아이가 숙제가 너무 많아서 다니기 싫다고 말해서 일주일 만에 환불받으러 간 적도 있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맞는지 헷갈릴 때도 많다. 학원을 열심히 당긴 학원 키즈가 나중에 의대에 가서 자기 부모님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는 말을 들을 때가 그렇다. 또한, 우리처럼 자기 주도 학습 위주로 자유롭게 키웠더니 나중에 부모님에게 어릴 때 공부 좀 열심히 시키지 왜 안 시켰냐면서 화를 냈다는 말을 들을 때도 그렇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딸아이들이 본인이 선택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정해주는 삶을 살면 나중에 행복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이 정해주는 삶을 산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하는 삶을 살게 하면 가끔 딸아이들로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는 말을 듣기도 한다. 얼마 전 만 8살밖에 안된 딸아이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시크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아빠, 내가 알아서 할게.


갖태어날 때 탯줄도 자르고 머리도 못 가눌 때부터 키워온 자식인지라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큰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소릴 들으면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나중에 너 같은 자식 낳아서 똑같이 당해보라던 엄마의 말씀이 생생히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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