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털적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가치
저녁 퇴근길에 오랜만에 출퇴근의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다 보니, 만원 지하철의 압박을 느낄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이날은 저녁 6시, 출퇴근 시간의 혼잡함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4호선 지하철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더위와 습기가 가득한 여름날, 에어컨이 최대로 가동된 객실도 그 열기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과 밀착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참 동안의 답답함 끝에 드디어 길음역에서 내렸다. 그렇게 몇 달 만에 다시 느낀 출퇴근의 감각은 내 일상과 삶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경험 속에서 나는 출퇴근의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출퇴근은 단순히 집과 회사, 또는 일과 삶을 잇는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의식, 즉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집에서 회사로, 삶에서 일로 넘어가는 출근, 그리고 그 반대인 퇴근 과정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어떤 감각과 감정을 경험한다. 이 감각들을 출퇴근의 감각이라 부르기로 하자. 출퇴근의 감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원 지하철이다. 만원 지하철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피로와 감정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이런 경험들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인내와 버팀의 시간을 요구한다.
이러한 출퇴근의 반복이 단순한 이동이 아닌, 일종의 통과의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통과의례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고된 과정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출생, 입학, 졸업, 취업, 결혼 등 여러 가지 통과의례를 거친다. 그 과정들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며, 때로는 외롭기도 하다. 매일의 출퇴근도 이런 통과의례의 축소판이다. 출근길의 불편함과 피로는 결국 일상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배우고, 또 그것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매일의 통과의례는 작지만, 그 안에 삶의 중요한 교훈이 숨어 있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삶의 다른 많은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프랙털 구조처럼 나타난다. 프랙털은 작은 부분이 전체를 닮은 구조로, 자연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지하철 출퇴근의 반복적인 경험도 프랙털처럼 삶의 더 큰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매일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통과의례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반복되는 패턴들이 모여 우리 삶의 중요한 과정들을 구성한다.
이러한 작은 통과의례들이 모여 결국 더 큰 삶의 과제와 연결된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은 과제들이 삶의 큰 과제를 이루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결국 매일의 일상에 의해 형성된다. 이러한 통과의례들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공존을 배우고, 불편함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신체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며, 매일의 삶이 어떻게 우리를 형성해 나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의 기록은 결국 삶의 큰 과제와 목표로 이어지는 중요한 축적의 과정이다. 나는 이러한 일상의 기록을 소중히 여긴다. 메모앱이나 다이어리에 매일의 생각과 활동을 기록하면서,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관심사, 신체적 변화를 비롯해 내면의 변화를 이해하게 된다. 작은 일상들이 모여 나의 삶을 밑에서부터 조금씩 쌓아가는 것을 느낀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러한 일상과 축적의 반복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25년간의 회사 생활 끝에, 더 이상 그곳이 나의 삶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는 삶을 살아가는 도구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퇴직을 하였다.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통과의례를 마친 것이다. 이제는 앞으로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매일의 작은 과제들이 쌓여 더 큰 삶의 과제를 이루는 여정을 걸어가려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큰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성공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의 삶을 조금씩 쌓아 나가며, 스스로에게 다정한 목격자가 되어 가려한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금 매일의 통과의례를 떠올린다. 매일의 작은 과제들이 모여 삶의 큰 과제로 이어지는 과정을 믿고, 의심과 망설임을 떨쳐내며 나아가려 한다.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의문과 두려움의 실체도 결국에는 그다음 단계의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더 명확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