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 보기

웨스트엔드 오페라의 유령 티켓팅 방법 및 좌석 팁

by 일월



아무리 우리를 런던까지 오게 만든 건 <히스토리 보이즈>라고 해도, 명색이 연뮤덕인데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안 볼 순 없다. 마음 같아서는 2개 정도 아니, 당연히 그 이상 보고 싶지만, 일정상 1개만 보기로 결정한다. 한국에서도 공연을 볼 때, 눈에 불을 켜고 할인을 찾는 우리가 웨스트엔드라고 다를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저렴하게 보는 방법을 자세히 찾아보니 주로 데이시트(Day Seat), 투데이틱스(TodayTix), TKTS가 나온다.



우리도 이 세 곳을 모두 둘러봤다. 그리고 (누누이 말했듯) 영어를 못하는 우리가 이미 아는 작품을 볼지, 보진 않았지만 워낙 유명해서 언어 장벽이 낮은 작품을 볼지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추려진 후보는 <식스>, <마틸다>, <레미제라블>, <하데스타운>, <오페라의 유령>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어 보고 싶던 <해밀턴>, <북 오브 몰몬>은 영어 실력을 쌓고 다시 와서 보는 걸로.



2023년 내한 공연과 한국 라이선스 공연 당시 취향이 아닐 거라 판단해 넘겼던 <식스>가 또 영국이라고 관심이 간다. 러닝타임이 짧기도 하고(80분) 콘서트 형식이라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열기를 느끼며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최종으로 <식스>를 골랐으나 티켓팅에 처참히 실패. 여유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국에서는 원래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고 한다. 역시 본토 파워인가. 어찌 됐든 이렇게 한 번만 시도하고 포기할 순 없다.

뮤지컬 식스: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삶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팝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



다시 우리 일정에 맞는 화요일에 공연하는 작품을 고르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오페라의 유령>으로 결정된다. 나는 중학생 때 음악 시간에 영화를 본 적이 있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아 안 본 거나 마찬가지였고, 내용과 음악이 내 취향은 아니라 느껴 가장 후순위였다. 그럼에도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에선 막을 내려 현 상황으로는 웨스트엔드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동생도 영화는 봤지만 뮤지컬은 보지 않아서 궁금해했다.



처음엔 투데이틱스 위주로 살펴봤는데, 오페라의 유령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데이시트 앱을 살펴봤지만, 또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오페라의 유령은 공식 사이트에서 메일로 링크를 받아야 하고, 그 링크를 통해 지정된 시간(오페라의 유령은 당일 오전 10시)에 예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날 숙소에서 조금 늦게 나와 예기치 않게 패딩턴 역 앞에 멈춰 서서 급하게 티켓팅을 하게 된다. 나는 예매 창 들어가기도 전에 흰 창이 떠서 망했다고 말을 뱉었다. 한편, 동생은 예매 창 진입 후, 흰 창이 떠서 재빠르게 새로고침을 하고 로딩을 차분히(?) 기다린 덕분에 1층 N32, N33 좌석을 1인당 37.5파운드(약 6만 7천 원)로 예매에 성공했다. 후에 찾아보니 오페라의 유령은 2층도 천장과 샹들리에 떨어지는 모습이 잘 보여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티켓팅할 때는 당장 보이는 좌석을 눌렀을 뿐이다.



간절히 로딩을 기다리는 두 손



7시 30분 공연을 보러 가는데, 일정이 빠듯해 20분 전에야 공연장에 도착한다. 그래서 공연장 구석구석 살피지 못하고 급하게 객석으로 입장한 게 아쉽다. 그러곤 좌석에 착석하자마자 다행이라고 느낀다. 내 바로 옆좌석 앞에 기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정신없이 티켓을 예매한 후, 우리 좌석은 시야 사이트에서 확인하니 별다른 특징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N34좌석은 피하는 걸 추천한다(또, 뒷열 비슷한 라인도 피하는 게 좋을 듯하다).



문제의 바로 옆 기둥..



이제 글 제목이 '후기'가 아니라 '보기'인 이유가 나온다. 후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날 테이트 모던과 타워 브리지, 스카이가든 등을 가며 걷는 일정이 많아 몸이 고단했는지 정말 잠이 솔솔 왔다... 하지만 익숙한 넘버가 나올 때마다 눈이 떠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1막 동안은 앞자리에 키 큰 남자가 앉아 시야가 좋지 못해 집중하지 못한 탓일까 싶었지만, 핑계일 뿐이었다는 게 2막에서 드러난다. 2막 때 앞에 키 큰 남자와 일행이 들어오지 않아 시야가 완전히 쾌적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렇게 오페라의 유령이 끝나고 나오니 정말 마치 꿈을 꾸고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정확히 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계속 넘버는 흥얼거리는.



나보다는 제대로 관극을 한 동생에게 후기를 묻는다. 보진 않았어도 워낙 유명한 배 타고 가는 연출, 샹들리에 떨어지는 연출 등을 실제로 웨스트엔드에서 보니 신기했고, 배우들도 넘버 소화를 잘해서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또, 전체적인 기승전결은 이해했지만, 조금 졸아서 세세한 부분을 놓친 게 많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짧은 영어 실력 탓도 있을 거라 털어놓는다.


오페라의 유령 샹들리에 사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볼 때는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관람할 수 있다. 실제로 <히스토리 보이즈>와 <오페라의 유령> 인터미션 때 옆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먹었다. 두 분 다 엄청 조심스럽게 먹으며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시는 게 느껴졌다. 인터넷에서 종종 봤던 "과하게" 자유로운 분위기보다는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배려하며 극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훈훈한 마음이 들었다.



His Majesty's Theatre 공연장 외부와 내부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는 해당 작품의 전용 공연장이 있다는 점이 한국과 가장 다르다고 느껴진다. 공연장도 그 작품의 일부가 되어 시간을 함께하고, 세월을 견디는 모습이 마치 시간을 품고 있는 듯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환경과는 다르므로 비교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측면으로 한국에서 뮤지컬을 보면서 각 작품과 어울리는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는 걸 체감하곤 했다. 무대예술은 그야말로 무대 자체도 공연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니까. 규모라고 다르지 않다. 무작정 공연장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는 무대를 적절히 선택하면 관객들이 훨씬 더 몰입하기 수월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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