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영국 말번에서 만난 인연 (2)

처음 만난 영국 현지인 집에 가다

by 일월



그렇게 결국 우리는 마크 집으로 향한다. 주변에 마땅한 숙소나 호텔도 없었고, 날이 너무 추워서 노숙은 무리라 판단했다. 마크가 없었더라면 아래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했겠지..



기차가 취소돼 갈 길을 잃은 사람들



당연히 조금은 무서웠다. 혼자였더라면 절대 못 갔을 거고.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는 편이라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위챗, 페이스북 등 서로 아이디를 공유하며 신상을 오픈하기도 했고, 같이 사는 고양이 사진도 보여주었다. 또, 다음에 놀러 오면 가이드도 해주고, 본인 집에도 초대하겠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그럼에도 마크가 우리에게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걸까"라는 궁금증은 지울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행객에게 마음의 문이 더 열리는 편이다. 내 영역인 익숙한 장소에 낯선 사람의 존재가 호기심과 재미를 일깨워주기 때문 아닐까. 동양인 관광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서 곤경에 처한 동양인을 마주하니 도와주고 싶다 느꼈을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10분쯤 가니 주택가가 보이고, 한 2층 집 앞에 선다. 잠시 정리를 하겠다며 고양이를 맡기고 가신다. 외국인과 접점이 하나도 없는 내가 그렇게 낯선 땅에서 처음 본 사람의 집에 발을 딛게 된다.



1층은 작업실에 가까웠다. 지저분하고 먼지가 많다며 양해를 구하셨지만, 그런 건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훨씬 추웠던 영국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야 뭐든 나으니까. 들어가자마자 벽난로가 우릴 반겨주었고, 벽난로 앞에는 소파가 그 옆엔 작장나무와 와인, 겹겹이 쌓인 책들과 인테리어 소품 및 액자들. 얼핏 보면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겐 모두 인테리어로 보였다.



마크의 취향이 담긴 집



이번 여행을 하며 우리나라와 다른 식문화를 느끼곤 했다. 바로 이날도 본식과 전식의 개념이 생소해서 음식 주문을 하는 데만 한참을 걸렸으니까. 주거문화도 당연히 다르다. 신발을 벗지 않는 문화야 익히 알고 있지만, 현지 그 자체의 주거 문화를 마주하니 정말 다르다는 게 확 느껴졌다. 나도 집을 이렇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집에서도 영국인의 자유로움을 보았고, 정형화된 집이 아니라 본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었다. 우리도 우리만의 취향이 담긴 집으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자리 잡자 춥진 않냐, 몸은 괜찮냐 묻자, 예뻐서 사진도 찍었다고 말하니 벽난로 앞을 더 예쁘게 꾸며주신다. 곧 핼러윈이었어서 귀여운 호박 캔들워머로.



마크의 모닥불 존



집 감상은 이만 멈추고, 우리가 약 8시간 동안 몸을 뉠 곳은 벽난로 앞의 소파. 그러곤 따뜻한 우유, 티, 쿠키 등도 가져다주신다. 동생과 둘이서 몸을 기대며 잠에 완전히 들기 전까지, 마크가 본인이 머무는 2층과 우리가 있는 1층을 왔다 갔다 하며 불이 꺼지지 않게끔 장작을 보충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첫차를 타러 갈 때도 어김없이 차로 데려다주신다. 출발 전 혹시 여행 중에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본인한테 연락하라는 스윗한 말도 함께. 다시 한번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건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고향에 와서 좋은 기억만 가져가길 바랐던 걸까.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남은 여행 동안에는 위챗으로 연락을 이어나갔다. 파리에서는 영상 통화도 하며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야경을 보여 주기도 하고.



지금도 왓츠앱으로 연락하며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처음 만났을 때 언제부터 이곳에 살았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말번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바로 말번 힐스 다녀왔냐고 묻기도 했었고, 사진도 많이 보여주셨다. 집 현관 앞에도 말번 사진이 있었고. 요즘도 말번은 물론이고 런던 사진도 종종 보내주신다. 눈이 왔다며 보여주는 풍경 사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런던의 사진 등. 엄청 예뻐서 눈 호강도 덤이다. 또, 우리가 갔던 극장 근처에 가는 날이면 그곳 사진을 보내주셔서 잠시나마 추억 여행에 빠지기도 한다.



마크가 보내준 풍경 사진과 우리가 갔던 극장 근처 사진



이날의 경험은 아마 다시 겪지 못할 특별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대가 없는 무조건적인 도움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받다니. 지금 내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무언가를 주저할 때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기억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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