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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viT Apr 15. 2016

내일의 발렌시아

스페인 - 발렌시아



  발렌시아의 두 번째 날. 오늘은 볼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가볼 곳은 발렌시아, 나아가서는 스페인의 미래를 상징하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이다. 그래서 그 과학과 예술의 도시가 어딘데?라고 물어보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발렌시아 시내에서 약 3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곳의 이름이 그거다. '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 우리나라식으로 고친다면 '예술과학단지'정도 되겠다.



개들이 오줌 싸라고 만들어놓은 공간. 애견인이 많으니 이런 곳도 생기는구나.



  맥주 한 캔과 새로 나온 프링글스. 총 2.99유로짜리의 가난한 브런치로 배를 채우고 걷는 길은 어제만큼이나 화창했다. 아직 아침인데도 꽤 더울 정도였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한국도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여름이 이르게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걷는 동안 느낀 건데, 포르투갈도 그랬지만 스페인 사람들도 개를 참 많이 키운다. 작은 개고 큰 개고, 순종이고 잡종이고 간에 한 마리씩 데리고 산책을 다닌다. '큰 개는 마당 딸린 집에서 키워야 한다'는 통념이 어느 정도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광경인데, 그도 그럴 것이 주위에 마당 딸린 집은커녕 전부 빌라식의 건물인데 신기하게도 큰 개들을 어떻게 잘도 키우는 모양이다. 





  계속 걷다 보니, 마침내 예술과 과학의 도시, 그 서두를 담당하는 예술궁(Palau de Artes)이 보인다. 멀리서만 봐도 알 수 있듯, 굉장히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다. 처음엔 중세 기사의 투구 같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투구라기보다는 꼭 고래의 대가리처럼 생겼다는 느낌.





  만화나 영화에서나 봤던 것 같은 유선형의 둥근 외관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수면 위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 고래 같아서 귀엽기도 했다. 그런 '머리' 부분이 오페라 하우스로 쓰이고 있다는 건 꽤 의미심장했다. 다만, 이 예술궁의 안까지 견학하는 건 불가능했다. 못 들어가게 하기에, 나중에 찾아보니 보수 공사 중이었다는 듯. 발렌시아 시가 부실공사라는 이유로 설계를 담당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를 고소했다는 것 같다. 




  예술궁 옆의 계단으로 내려오면, 뒤로 길게 이어진 건물들이 보인다. 얕게 찰랑거리는 연못들에 비치는 하늘색이 예뻤다. 흰색의 건물들 아래 펼쳐져있는 하늘색 연못이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었던 하얀색 위주의 건물들에게 생기를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늘도, 바람도 한 점 없었던 날씨도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하늘색 연못이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면 오른편으로 눈알 모양의 아이맥스 상영관이 보인다. 이 곳도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힘들게 온 건 아니었지만 들어가 볼 수는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제 전면에 펼쳐진 곳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지금은 국왕이 된 - 이 '예술과 과학의 도시'를 지을 당시에는 왕자였던 - 펠리페 6세의 이름을 딴 '펠리페 6세 과학박물관'이다. 이 곳에서 유일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위치로 따지자면 물고기처럼 길쭉하게 생긴 이 예술과학단지의 중앙에 길게 자리한 펠리페 6세 과학관은 고래의 등뼈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하얗고 잔가시들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는 게, 꽤 그럴싸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큰 등뼈 주위로 가시들이 뻗어나온 형상. 그러고 보면, 사실 이 펠리페 6세 과학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변으로 늘어선 테라스도, 다리도 모두 흰색 위주다. 그래서인지 이 곳을 지나다니면서 단지 전체가 꼭 거대한 동물의 뼈다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랜 옛날에나 존재했을 법한, 그런 거대한 동물의 잔해.





  아주 먼 미래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에게서 아주 먼 과거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아이러니하다. 돌로 써진 역사 같던 발렌시아의 과거를 어제 보고 왔지만, 어쩌면 이 건물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의 기록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신 햇살 아래 하얀빛으로 남아있는 발렌시아의 '내일'의 기억들. 과학과 예술의 도시는 그랬다. 옛날에서 온 듯한 낭만과, 미래를 목전에 두고 있는 고양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상 위에 우뚝 선 건물이 예술로 보이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기에, 발렌시아는 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스페인의 마지막 목적지인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가우디의 건물을 마주할 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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