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되찾기 위한 매일 '글 쓰/적는' 습관 실천하기
지은이 루시드폴
나를 기울이면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마을 포구로 갔다. 아주 오래 전, 배가 들락거렸다는 이 포구의 도댓불* 옆으로 하얀 갈매기들이 가지런히 앉아 바람을 맞고 있었다. 포구 끝으로 걸어가 눈송이가 떨어지는 선창에 앉았다. 그리고 빙하처럼 푸른 물속으로 동전만 한 수중 마이크를 드리웠다.
멀리서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올레객들이 나를 보며 지나간다. 콘크리트 담 뒤에 선 아내는 나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눈을 머금은 갯바람에 옷깃 사이로 스미고, 털모자 위에 헤드폰을 덮어 쓴 나는 장갑을 벗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그 소리를 듣는다.
갯바위를 휘청휘청 걸을 때마다 검은 갯강구들이 불티처럼 흩어졌다. 군데군데보이는 백사장 구멍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보말이나 게의 집일까. 그들은 어쩌면 이 낯선 침입자의 소리를 듣고 숨죽인 채 숨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조심스레 모래를 파서 마이크를 묻고 주저 않았다. 헤드폰으로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가 흐르는 소리, 다이어프램*을 톡톡 건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누구의 소리인지, 무얼 전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 있다.
(중략)
바다에서 길어낸 소리를 컴퓨터로 옮겨 녹음된 파일을 틀자 온갖 소리들이 말을 건넨다. 이건 누구의 소리일까. 물고기일까. 보말일까. 용천수일까. 물속에서는 온몸으로 소리를 듣는다는데.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들을수록 가깝게 느껴지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니 내가 속하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소리를 길어 올리려면 내가 들리지 않아야 했다. 꼼짝없이 몸을 낮추고 기다려야 마이크로 전해지는 작은 울림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라는 불순물이 타자의 소리에 섞이지 않게, 마이크에 스미지 않도록, 나를 숨기고 멈춰야 했다. 누군가를 듣는다는 건 나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몸과 마음을 기울이는 과정이었다. 그래야 다른 세계를 들을 수 있었다.
(중략)
나는 '귀를 기울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귀를 기울인다는 건 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인간은 귀를 움직일 수 없도록 진화했지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귀가 커다랗게 부풀어 말하는 이를 향하는 만화 같은 장면을 상상한다.
(중략)
영어 단어 'listen'은 목적어가 없는 자동사이고 듣는다는건 내가 주체가 되는 적극적 행위다. 내가 세상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를 건네주는 겸손하고도 능동적인 행위다. 그래서 듣는 건 움직이는 것이며 동시에 침묵하는 것이다. 'listen'을 애너그램*으로 재조합하면 'silent'가 되는 건 단지 우연이겠지만 말이다.
*제주의 옛 등대
*diaphgram 소리를 받아들이는 마이크의 얇은 막
*anagram 단어의 철자를 뒤바꿔 다른 단어로 만드는 말놀이
어제는 오후 4시경부터 기면증에 걸린 것처럼 졸음이 쏟아져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저녁 시간에 하는 필라테스 수업을 다녀왔는데 그대로 밤까지 몽땅 시간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정신없는 오후 시간을 보내느라 필사를 놓쳤고, 이게 뭐라고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잠시...하다가 이 모든게 다 핑계라는 생각에 반성 백 스푼.
몇 해 전 하얗게 눈이 내리던 겨울날,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 우연히 가게 되었었다. 작가 루시드폴은 표지 안쪽에 사인을 하며 '기울이는 마음'이라고 썼다. 나를 기울이면 들리고, 들리면 침묵할 수 있게 되며, 침묵하면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긍정의 증폭 작용. 요즘처럼 번민이 많은 시기에는 내 안의 목소리도, 타인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마음을 기울이고 귀를 열 것. 겸손한 자세로 나와 세상을 보다 확장하기.
20년 가까이 매달 3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글을 쓰고, 페이지를 편집하고, 출판을 하는 에디터란 직업을 가졌었다. 매거진을 그만 둔 이후 약 5년 간은 난필증 또는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거나 양껏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감각을 언어화 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글쓰기가 뇌운동과 내면 챙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초심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써/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30일 동안 매일 필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필사하는 책은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