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Farmer Apr 09. 2023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완벽주의랑


(*브런치 두 번째 글은 요즘 재미있게 하고 있는 도시농부나 얼마 전 다녀온 워케이션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뭐에 홀린 듯 제목을 저렇게 쓰고 있었다. 1부는 아무래도 자기 고백 시리즈가 되려나 보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완벽주의랑


일상에서 제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이었던 것 같아요.
       

내게는 존경하는 인생의 큰 선배님이 있다. 직장에서 사수이셨자 또 여성으로 어른으로 자주적이고 정직한(책임감 있는) 삶 자체가 배움인 분이다. 평소 말을 내뱉을 때 자기 검열이 강한 편인 나이지만 있는 그대로를 공감해 주시는 그분 앞에서는 포장 없이 솔직해질 수 있었는데, 몇 해 전 오랜만에 뵙고 안부를 나누는 자리에서 갑자기 고해성사하듯 저 말이 툭 꺼내져 나왔다.  



완벽할 수 있다는 완벽한 착각      


오 마이갓. 죄책감이라니.

말하고도 잠깐 스스로에게 황당했다. 그리고 이후로 오랫동안, 계약서도 없이 내면에 단단히 입주해 있던 죄책감이란 반갑지 않은 룸메이트에 대해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이전의 나  

-하거나 안 하거나(중간 없음)

-할 거면 완벽하게

-이게 최선일까?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계속할 의미가 없음  

-버퍼링이 필요해, 필 받으면 금방+잘하니까

-실수하면 아마추어, 실패해도 아마추어  

-최고가 아니면 다 같은 아마추어  

-루저마인드 사양

-싫어하는 말 : 이 또한 지나가리(방관무기력무능) 

-내가 하면 뭔가 달라야 함  

-프로병       


평소 내면 상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잘못이야

-미룬 게 잘못이야

-멈춘 게 잘못이야

-실수가 잘못이야

-이래서 잘못이고 저래서 잘못이니 모두 다 잘못됐네(이생망)    

-온전한 것이란 게 있나?(시니컬)

-나는 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가(세상 답답해짐)      



마음에도 알고리즘이 있다     


죄책감의 근원을 파헤쳐 나의 내면을 꼬꼬무하는 과정은 결국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완벽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게 해 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 마음속에도 알고리즘이란 것이 있어 내가 설정해 놓은 키워드 속에서 줄기를 뻗어가며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는 건 예상되는 수순이다. 스스로를 압수수색해 온갖 죄명을 부여하고, 셀프 형벌을 내리는 사람의 내면은 네버엔딩 헬지옥이다. 또한 나에게 관대하지 못한 이가 타인에게 관대는 물론 친절하기도 힘들다. 나뿐 아니라 주변에는 완벽주의로 힘겨워하는 이들 많다. 실제로 대한민국 성인 53.62%가 자신을 완벽주의자라 생각한다고 한다(연세대학교 상담심리연구실). hoxy 당신도? 둘 한 명은 완벽주의 알고리즘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완벽주의(完璧主義, Perfectionism)

완벽주의는 이루기를 원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보다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 자신을 향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여 보다 높은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것을 중심으로, 질서와 정돈을 원하는 성향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사상을 가지거나, 그런 심리 상태의 사람을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생각해 보자,      

완벽할 수 없는 완벽추구 키워드가 파생할 수 있는 부정적 알고리즘     


불안 – 두려움 - 억압 – 죄책감 – 수치심 - 분노 – 자기부정 – 자기 비하 – 자기 모욕 – 자기 불구화 - 타인비하 – 타인부정 – 비판비난무시 - 손절 또는 타인통제 – 갈등

높은 목표 또는 목표 없음 – 스트레스 - 좌절 – 무기력 – 냉소 – 허무 – 강박 - 번아웃 – 불면증 - 우울 – 공황장애   

NO기대 – NO희망 – NO성장          



그러나 모든 완벽주의가 부정적 양상으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완벽주의 성향이 성취의 모티프가 되어 성장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강철멘털형). 완벽주의는 연구자에 따라 다른 표현으로 구분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공감된 완벽주의 유형의 구분 방식을 소개한다.      


 

완벽주의 유형 


A.

1 눈치 백 단 인정지향형

누구에게든 쉽게 호감을 얻지만 완벽주의 수준이 가장 높으며 타인을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소홀한 유형      

2 스릴추구 막판스퍼트형

임기응변이 뛰어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을 맡았을 때 실패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일을 미루는 경향이 있는 유형      

3 방탄조끼 안정지향형

신중하고 성실해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환영받지만 안전과 현상 유지를 1순위로 여기기 때문에 변화나 도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유형      

4 강철멘털 성장지향형

자신감 있고 주도적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일면 튀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유형      

출처 : <네 명의 완벽주의자> / 이동귀, 손하림, 김서영(연세대학교 심리학연구실)      


B.   

1 자기 지향적 완벽주의

지나친 자기 강요, 극단적 자기비판, 개인적 결함의 수용 거부로 특징지어짐. 자기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타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가혹한 비난과 경멸, 비하와 모욕을 스스로에게 쏟아 부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함.      

2 사회처방적 완벽주의

타인들에 의해 강요된 완벽한 역량과 수행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결국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질 거라고 믿는 완벽주의. 타인은 그 수준에 능수능란하게 도달하는 반면, 자신이 타인보다 하지 못한다고 믿기도 함.    

3 신경증적 완벽주의

실패를 회피하려는 강한 욕구와 지나치게 높이 잡은 기준은 목적을 달성할 여지를 불가능하게 유도하여 자신이 노력해서 남들보다 우수한 수행능력을 발휘하거나 높은 성과를 이룬다 해도 좌절감에 빠짐. 제삼자가 봤을 때 그 사람이 잘 하든 못 하든 간에 언제나 자기 비하로 이어짐. 스스로의 완벽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패배감과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모 아니면 도'식 사고방식으로 귀결되며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증에 빠지고 더 심하면 우울장애, 섭식장애,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 위의 두 사례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사회적 지지가 충분하면 제법 적응할 수 있지만 사회적 지지가 없을 경우 이곳으로 떨어질 수 있어 최악의 경우로 꼽힘.  

출처 : 나무위키     


완벽주의는 왜 생길까?


심리학, 정신분석학 전문가들이 꼽는 원인들은 이렇다.   

   

1 부모의 엄격한 훈육, 기대치, 비판   

2 충분히 수용받지 못한 성장기의 경험(트라우마, 결핍)

3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과잉자아, 낮은 자아 등)

4 높은 도덕심

5 유전적 요인(불안, 신경증 등)        



그랬구나 나는

그랬구나 너는      


작은 실수, 어딘지 껄끄러운 느낌 하나도 마음속에서 정리가 되어야 넘어가는 성격의 나는 스스로를 자주 피곤한 스타일이라 생각했다. 일에 대한 남다른 프로의식 지향과 성취 중심 사고도 이런 예민한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과 성장이 게 어떤 의미인지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면서 나는 비로소 내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던 지점들을 날림으로 넘어가지 않고(이 역시 완벽주의 발동)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서 나의 약한 부분, 강한 부분, 특성, 어떤 상황에서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내 자신을 만나고 평가, 판단, 비판을 내려놓은 공감의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완벽주의의 반대말은 ‘대충이나 이래도흥저래도흥 류의 소울리스’ 처신이 아니다. 좀 더 정직하게 내 불안과 욕망을 이해하는 관점 그리고 타인의 불안과 욕망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개인의 삶이든 사회의 역사든 거시적으로 보면 모든 과정과 시간이 누적되어 하나의 결과와 서사를 만들고, 그러므로 저마다의 인생 그래프에서 점을 찍은 개별 결과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해석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기 객관화와 자기 존중, 자신에 대한 수용과 인정이 타인도 받아들이게 하고 그런 건강한 관계들이 모여 근본적인 행복의 순간들을 만드는 것일 거다.

     

다음 글은 2주 전 심어둔 토종감자와 곧 만날 나의 포도나무 한 그루 이야기를 할까 하지만 아마 최근 흥미롭게  임포스터(IMPOSTER, 콜롬비아 대학교 바너드 칼리지 리사손 교수. 성공한 여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가면 증후군)와 메타인지 개념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니웨이,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글을 공개적으로 연재하기’. 솔직한 글에는 인격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의 순기능이자 인간을 성찰하게 하는 글의 힘이다. 브런치스토리는 정직하게 나를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Greece, 2011.

오랜만에 꺼내본 12년 전 유럽 여행 사진. 왜였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 햇살이 하얗게 쏟아지고 모든 것이 제 색으로 빛나던 그리스가 계속 생각났다.

작가의 이전글 "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을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