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되찾기 위한 매일 '글 쓰/적는' 습관 실천하기
지은이 김지수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中
중력을 거스르고 물결을 거슬러라
"선생님 말씀대로 만약 우리가 기호계의 문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하면, 외로움도 죽음도 겁낼 일이 아니겠지요."
"물론이야. 여섯 살 때부터 질문을 시작한 이래, 나는 타인과는 내내 껄끄럽고 소외되고 외로웠네. 내가 사는 내내 외로웠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 아무개가 외롭다니 우리가 찾아가서 좀 도와줍시다' 그래. 제발, 오해하지 마시게. 그건 남이 도와줘서 없어질 외로움이 ㅇ아니야.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생활에 불리하지만, 그런 자발적 유폐 속에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거지.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 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자기만의 동력이요?"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아. 생각이 곧 동력이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많으면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가벼워진다고요?"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그런 세계에서는 사실 '사회성'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중략)
"다만 자네에게 얘기한 대로 우린 짐승이 아닌 인간이잖아. 주체적 인간으로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가느냐, 그 선택지 속에서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해. 동양 사상만 갖고도 안 되고, 서양 사상ㅇ만 갖고도 안 돼. 나도 자네도 포함해서 모든 현대인은 중세와 근세의 역사적 수레바퀴가 지나간 벌판의 한복판에 고아처럼 떨어져 있는거야. 여기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면서 생각해야 해. 동쪽으로 갈지, 서쪽으로 갈지."
"고아는 서글픈데, 고아라는 감각이 또 우리를 한 발 한 발 신세계로 떠미는군요."
"그렇지.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 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게 등용문이야.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네. 다만, 잊지 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말야."
그래. 누가 뭐래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성공할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듯, 물길을 거슬러 생동하고 헤엄치면서.
20년 가까이 매달 3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글을 쓰고, 페이지를 편집하고, 출판을 하는 에디터란 직업을 가졌었다. 매거진을 그만 둔 이후 약 5년 간은 난필증 또는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거나 양껏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감각을 언어화 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글쓰기가 뇌운동과 내면 챙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초심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써/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30일 동안 매일 필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필사하는 책은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