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30일 문장채집 프로젝트_21

초심을 되찾기 위한 매일 '글 쓰/적는' 습관 실천하기

by Life Farmer


안목

지은이 유홍준


미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


안목, 미를 보는 눈

'미를 보는 눈'을 우리는 '안목'이라고 한다. 안목이 높다는 것은 미적 가치를 감별하는 눈이 뛰어남을 말한다. 안목에 높낮이가 있는 것은 미와 예술의 세계가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보통 예술적 형식의 틀을 갖춘 작품을 두고서는 안목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적인 작품 앞ㅇ에서는 안목의 차이가 완연히 드러난다.

서양 근대미술사에서 쿠르베의 리얼리즘, 마네의 인상파, 반 고흐가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직 세상의 안목이 작가의 뜻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대는 물론이고 당대에도 그 예술을 알아보는 귀재들이 있어 그들 덕분에 예술적 재평가와 복권이 이루어진다.

영조 때 문인화가인 능호관 이인상의 그림과 글씨는 모두가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안목이 낮은 사람의 눈에는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대상을 소략하게 묘사하여 기교가 잘 드러나지 않고, 먹을 묽게 사용하여 얼핏 보면 싱겁다는 인상까지 준다.

그러나 안목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그 스스럼없는 필치 속에 담긴 고담한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든다. 한껏 잘 그린 태를 내는 직업 화가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고상항 문기가 있다며 더 높이 평가한다. 작품의 이런 예술적 가치를 밝히는 것은 미술사가의 몫이라고 하겠지만 일반 감상가 중에서도 안목이 높은 이는 실수 없이 그 미감을 읽어낸다. 능호관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재로라는 문인은 그의 서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능호관의 그림과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기해서 좋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허해서 싫다고 한다. 그러나 능호관을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바는 참됨에 있다. 능화관의 매력은 기름진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한데 있으며, 익은 맛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맛에 있다. 오직 아는 자만이 알리라.


(중략)

높고, 깊고, 넓은 안목


박규수는 19세기 후반, 서세동점의 어지러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던 분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1862년 임술농민봉기 대는 백성을 무마하는 안핵사로 진주에 파견되었다. 그곳의 상황을 살펴본 후에는 지금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단순히 이 지역 수령들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전정, 군정, 환곡 등 사회 전반의 문제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역사책에서 진주민란은 삼정의 문란 때문에 일어났다고 배우고 있는 대목이다.

박규수에게는 이처럼 세상의 추이를 보는 안목도 있었다. 그는 말년에 조국의 장래를 위하여 가회동 집에서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등 젊은 양반 자제들을 불러 모아 개화사상을 가르칠 정도로 안목이 원대했다. 지금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대안목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 시기 역사를 전공하는 내 친구인 안병욱 교수에게 그의 안목에 대해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안교수, 박규수는 안목이 대단히 높았던 것 같아."

"아니야, 박규수의 안목은 깊었어,"

이에 우리는 안목이 높으냐, 깊으냐를 놓고 한참 논쟁을 하였다. 이때 마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만나게 되어 누가 옳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당신의 대답은 또 달랐다.

"둘 다 틀렸어. 박규수의 안목은 넓었어."

확실히 박규수의 안목은 보기에 따라 높고, 깊고, 넓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같은 안목이라도 분양마다 그 뉘앙스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굴지의 안목들이 버티고 있어야 역사가 올바로 잡히고, 정치가 원만히 돌아가고, 경제가 잘 굴러가고, 문화와 예술이 꽃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대에 안목 높은 이가 없다면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천하의 명작도 묻혀버린다. 많은 예술 작푸밍 작가의 사후에야 높이 평가받는 것은 당대에 이를 알아보는 대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를 보는 눈이든 세상을 보는 눈이든 당대의 대안목을 기리는 뜻이 여기에 있다.




존경하는 유홍준 박사님이 쓰신 도서 중 '안목'이라는 책이 있다. 평소 '안목(眼目)'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고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는 편이다. 유홍준 박사님의 말처럼 "안목은 꼭 미를 보는 눈에만 국한하는 말이 아니고 세상을 보는 눈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가 살면서 '안목'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한 사람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게 바라보는 관점과 힘이다. 안목의 쉬운 말은 센스라고 해야할까, 합리적인 이성이라고 해야할까, 감도 높은 취향이라고 해야할까, 그 복합적인 뜻을 함축적으로 다 담기에 '안목' 만한 단어가 없다.

안목이 있는 그리고 좋은 사람이고 싶다. 평생을 걸쳐 가꾸어야 할 것이다.




20년 가까이 매달 3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글을 쓰고, 페이지를 편집하고, 출판을 하는 에디터란 직업을 가졌었다. 매거진을 그만 둔 이후 약 5년 간은 난필증 또는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거나 양껏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감각을 언어화 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글쓰기가 뇌운동과 내면 챙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초심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써/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30일 동안 매일 필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필사하는 책은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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