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30일 문장채집 프로젝트_5

초심을 되찾기 위한 매일 '글 쓰/적는' 습관 실천하기

by Life Farmer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해남 외


지은이 유홍준


남도의 봄, 남도의 원색


이제 우리의 오늘 일정을 끝났다. 강진읍내 남도장여관에 여장을 풀고 해태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인솔자의 긴장을 풀고 차창 밖으로 비치는 남도의 봄빛은 한껏 끌어안았다. 내 얼마나 그리워하던 남도의 봄날이었던가. 그것은 여덟번의 답사 중 꼭 두번째 만나는 조선의 원색이었다

유난히도 봄이 일찍 찾아온 금년 3월 28일, 강진땅의 모든 봄꽃은 피어 있었다. 산그늘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 꽃을 머금은 채 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의 동백꽃이 윤가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선홍빛을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자인하게 벌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은 묵은 동네 토담 뒤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 피고 지는 저 꽃잎의 화사한 빛깔은 어쩌다 때가 되면 한번쯤 입어보는 남도의 연회복이라면, 남도땅의 평상복은 시뻘건 활토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초록 물결 그리고 간간이 악센트를 가하듯 심겨 있는 노오란 유채꽃, 장다리꽃이다.

한반도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강진의 하늘빛은 언제나 맑다. 강진만 구강포의 푸르름보다도 더 진한 하늘빛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청색의 원색이다. 색상표에서 제시하는 바 싸이언(C) 100퍼엔트이다. 솔밭과 동백나무숲이 어우러지며 보리밭 물결이 자아내는 그 빛깔은 노란색과 청색 100퍼센트가 합쳐진 초록의 원색이다. 유채꽃, 장다리꽃, 개나리꽃은 100퍼센트 노랑(Y)의 원색이며, 선홍색 동백꽃잎은 100퍼센트 마젠타(M)이다. 그 파랑, 그 초록, 그 노랑, 그 빨강의 원색을 구사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남도의 봄 이외에 아무도 없다. 그 원색을 변주하여 흑갈색 황토와 연분홍 진달래, 누우런 바다갈대밭을 그려낸 화가도 남도의 봄 이외엔 아무도 없다.


(중략)


나는 우리시대의 화가들에게 단호히 말한다. 남도의 봄빛을 보지 못한 자는 감히 색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중략) 그 뛰어난 기술, 그 좋은 시설의 100분의 1만이라도 잃어버린 조선의 원색을 찾아내는 데 사용해달라고. 우리에게 무한한 평온과 행복한 환희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향토의 원색을 제조해달라고.

남도의 봄,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이고 우리의 원색인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원색의 물결 속을 거닐고 있었다.


1992. 4.






벌써 3년 여에 걸쳐 강진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다. 제 2의 고향 같은 강진. 실제로도 그렇고.(친할머니의 고향이 강진이다.) 강진에 처음 갔을 때가 마침 봄이었다. 국민교양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의 첫 번째로 대장정의 시작을 연 강진. 유홍준 박사님이 그토록 극찬했던 조선의 원색, 남도의 봄을 마주한 것은 행운이었다. 강진을 알리는 많은 프로젝트들을 해오고 있지만 유홍준 박사님의 글만큼 적확하며 품위있는 표현은 쉽게 나오기 힘든 것이다. 강진은 봄뿐 아니라 사계절이 제 색이 있다. 다가오는 프로젝트로 곧 가게 될 강진에서 초심을 다시 떠올리며, 많은 영감과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다.





20년 가까이 매달 3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글을 쓰고, 페이지를 편집하고, 출판을 하는 에디터란 직업을 가졌었다. 매거진을 그만 둔 이후 약 5년 간은 난필증 또는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거나 양껏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감각을 언어화 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글쓰기가 뇌운동과 내면 챙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초심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써/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30일 동안 매일 필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필사하는 책은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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