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되찾기 위한 매일 '글 쓰/적는' 습관 실천하기
지은이 정혜신
슬픔을 억누르면 기쁨도 밋밋해진다
(중략)
사람이 살면서 접하는 모든 상황에는 사실과 정서가 함께 존재합니다. 감정 기능이 마비되어 정서를 느끼지 못하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그러면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관계는 당연히 꼬이게 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들도 잘못 끼울 수밖에 없듯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대인관계든 현실감각이든 그 사람이 내리는 모든 판단이나 해석들이 줄줄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통제하는 버릇이 가져오는 감정마비는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하고 끔찍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불러옵니다.
슬픔이나 고통을 억누르고 외면하면 당장은 고통을 덜 느끼므로 전보다 편안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슬픔이나 고통의 감정을 누르면 즐거움,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도 같이 눌러집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선 자체가 평평해지는 겁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전보다 덜 힘들고 잘 견딘다 싶어 내가 더 성숙해졌나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감정선 자체가 밋밋해지면 대인관계에서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아픈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눈물을 쏟기도 하는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겁니다. 당황스럽지요. 그러면 지금 울어야 하나 하고 머리로 생각하게 됩니다.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산하는 거죠. 반대로 어떤 재미난 이야기에 사람들이 다들 숨넘어갈 듯 웃는데 나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됩니다. 눈치 보다가 0.5초 차이로 따라 웃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대인관계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를 느낍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힘든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피했던 일은 이렇게 감정마비로 연결되며 내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가져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슬픔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고통을 고통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당신으로 충분하다'. '홀가분', '사람 vs 사람', '남자 vs 남자' 등을 집필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 뒤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20대에 김형경 작가와 함께 정혜신 박사의 책은 휘청이는 나의 내면의 중심을 잡아두는 고마운 지렛대였다.
오랫만에 다시 접한 그녀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치유공간 '이웃'이라는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운영하며 조망한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적어내려간 책이다.
"평소에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싫은 것도 없고, 무덤덤해요."
겨울이면 찾아오는 SDA(seasonal affective disorder) 증상때문에 지난 겨울,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런데 이게 병원에 올 문제이긴한건가?'라며 혼자 생각했었는데, 아무리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먹어도 큰 변화를 못느끼던 몇 달을 보내고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내 감정을 통제하고 제때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지나면 마주하게 되는 감정 상실의 상태. 슬픔과 고통을 억눌렀을 때 기쁨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점은 건조해진 나를 다시 깊게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제대로 이별하기. 아직 인사가 온전히 끝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하여 다정한 작별을 고한다.
20년 가까이 매달 3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글을 쓰고, 페이지를 편집하고, 출판을 하는 에디터란 직업을 가졌었다. 매거진을 그만 둔 이후 약 5년 간은 난필증 또는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거나 양껏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감각을 언어화 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글쓰기가 뇌운동과 내면 챙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초심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써/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30일 동안 매일 필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필사하는 책은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