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로 보는 NCT WISH, TWS, ZB1
나의 반짝이는 청춘: HIGHTEEN
NCT WISH -Steady , TWS -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ZB1 - BLUE
뭐랄까, 하이틴(Highteen)이란 단어는 그 시절을 아무리 벗어나도 듣는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학교’라는 공통된 공간에서의 보편적인 경험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동시에 아주 다른 사건, 이를테면 누군가의 특별한 경험을 내 것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년에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선재업고 튀어> 도 이런 하이틴의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 중 하나. 그 시절 싸이월드를 점령했던 loveholic- loveholic을 다시 들으니 심장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했다. 나의 경우 아직도 f(x)의 <goodbye summer>를 자주 듣곤 하는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교실 앞 복도에서 혼나던 우리 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고를 졸업했고 중학교시절 짝사랑 상대는 내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학창 시절이 이 아름다운 노래들로 과하게 표백되어 미화됐을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떠올리면 어떤 향수를 일으키는 추억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추억의 틈에 K-pop이 녹아있다. 첫사랑보다 최애가 먼저 생기는 순간, 주변의 남자애들은 다 시시해 보이고 오직 최애만이 반짝반짝 빛난다. 누군가는 동경과 사랑은 혼동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한순간에 눈부시게 만들고 힘든 어느 날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이 마음은 분명 사랑이 맞다.
학창 시절의 이 보편적 감정, 짝사랑과 동경은 다양하게 변주되며 K- pop 하이틴 장르의 공식이 되었다. ‘튜닝의 끝의 순정’이라 하던가. 한동안 섹시하고 어른스럽고 악동이 넘쳐나던 k-pop 보이그룹 씬에 각자의 청량함을 한 움큼 안고 등장한 소년들이 있다.
NCT WISH -Steady
켄지 작곡가님이 작사까지 맡으신 NCT WISH의 데뷔곡이다. 정말 말 그대로 반짝이는 멜로디와 "Let’s go steady"라는 hook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소년들이 바라는 자신들의 미래를 당차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대로 변하지 마, 우리 오래오래 가자.
이 말은 아티스트가 바라는 염원이자 팬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k-pop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타의(라 쓰고 ‘사건’이라고 읽는다)’에 의한 탈덕. 그런 슬픈 일 없이 '우리 오래, 이대로만 가자'라고 말하는 이 어린 소년들이 k-pop 팬으로서 기특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기획을 완성한 A&R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NCT WISH의 경우 하이틴 속 ‘동경’과 ‘반짝거림’을 최대치로 사용한다. TWS가 '같은 반 옆자리의 소년'의 이미지를 내세운다면 NCT WISH는 지브리 영화나 판타지 속의 소년을 떠올리게 만든다. '소원'과 '기적'이라는 키워드들도 현실감보단 환상성을 더 증폭시킨다.
소원을 말했어 (I wish)
넌 거기 있었고 (Right there)
그날의 너와 날 기적이라 부르자
'소원을 말했'고, 그때 '넌 거기 있었고' 그날은 '기적'이 된다. 벌스 1의 4마디로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설명함과 동시에 그룹의 아이덴티티(WISH)까지 완벽하게 녹여낸다. 이어지는 가사에선 하이틴의 반짝거림, 청춘, 설렘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받쳐주며 '그날'이 'Steady(꾸준히, 오래)'가 될 수 있게 이어지는 서사를 부여한다.
사랑이 자라나는 걸 봐봐
놓치지 말아
지금 우리는 시작된 거야
우리가 만난 '그날'은 '사랑이 자라나며' 시작되고 'Steady'를 향해 나아간다. '프리코러스'는 '벌스'와 '코러스'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와 더불어 변화한 멜로디를 돋보일 수 있게 가사의 '킥(kick, 매력포인트)'이 들어가야 한다. 여기선 '사랑이 자라나는'이라는 표현이 킥이 된다. '첫 만남' - 'Steady'를 잇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자라나다'라는 동사를 통해 너무나 매끄럽게 잘 연결했다. k-pop가사의 경우 의미가 아주 매끄럽지 않아도 '동사'나 '명사'의 뉘앙스로도 충분히 의미를 이어 줄 수 있다. 가사와 가사 사이의 행간을 멜로디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넌 아름다워
푸르디푸른 눈빛
그 다정 다정 말투
이대로 변하지 마
코러스로 넘어가는 부분의 멜로디와 '넌 아름다워'라는 문장이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 원래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잘 어울리는데, 작곡가가 작사를 할 때 가장 좋은 느낌을 주는 예시인 것 같다. '푸르디푸른', '다정 다정 말투' 같은 표현도 10대인 WISH와도 잘 어울리고 소년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어쩌면 켄지 님께서 가사를 작업하실 때 그룹과 어울리는 형용사, 동사들을 미리 모아놓고 구성을 하시는 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코러스가 너무... 너무 좋다. 가끔 너무 좋은 가사를 보면 무력해지곤 하는데, 어떤 말도 다 부질없는 칭찬인 것 같고 그냥 하염없이 반복재생을 하게 된다. 어떤 노래는 일상의 BGM이 되고 어떤 노래는 듣는 이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데 NCT WISH - Steady는 후자에 가깝다.
뜨거운 바람 속
세포는 너를 느껴 버렸어 (Yeah)
이대로 가면 돼
대체 '세포는 너를 느껴버렸어'라는 문장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노래의 리듬도 0 00 00 00 000 , 이렇게 끊어지다 보니 세 - 포는 너를 느껴 버렸어,라는 문장이 더 정확하게 들리고 마치 뜨거운 바람이 불면서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빛이 생각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불어넣는다. 감각적이면서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린 가사는 이렇게 오래 듣는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
https://youtu.be/IKlkZZv76Ho?si=_9gaFtCLippBjX-2
.... ps.....
이번 글은 하나의 시리즈로 다음 글에선 TWS, ZB1의 노래를 다룰 예정이다.
세 노래 모두 가사와 멜로디가 찰싹 붙어 매력을 극대화시킨다고 해야 할까.
더불어 눈이 녹고 봄이 오는 새 계절에 무척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니
새 봄을 기다리며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