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쌓인 스트레스를 야식으로 풀었다. 그 탓에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괴로웠다.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안 되겠다 싶어 결심했다. 내가 운동까지는 안 해도 야식만은 안 먹겠노라. 대단한 몸매를 갖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인간답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은 내 몸이 프레쉬해야 하니까.
그러다 떡볶이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들이 잠든 밤, 한국 예능 하나 틀어놓고 맵고 달달한 떡볶이를 먹고 싶었다. 깔깔 웃으며 맛있게 먹고 나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결심했다.
"여보. 나 오늘 치팅데이야. 말리지 마."
그 말을 듣자마자 옆에서 레고를 하던 둘째 아이가 말했다.
"치팅(cheating)은 나쁜 거야."
영어 치팅(cheating)의 문자적 의미만 알고 있는 딸의 한 방이다. 캐나다에 사는 4살 아이는 다이어터들 사이에서 치팅데이가 어떤 뜻인지 알 길이 없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이의 눈은 레고에 고정되어있었다. 비장하지도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그것이 아이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아이에게 치팅은 그냥 나쁜 거다. 버튼을 누르면 뿅 하고 튀어나오는 장난감처럼 치팅! 을 입력하니 나쁜 거야! 가 튀어나온 거다.
아이랑 영화를 보다 보면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물을 때가 있다. 아직 복잡한 스토리라인은 이해할 수 없다. 일단 저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가 아이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재판장 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정상참작 사유 따위는 없다. 그가 왜 나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한 사연도 필요 없다. 심신이 미약했다는 구차한 변명에도 가차 없다. 나쁜 것은 그냥 나쁜 거다.
나이를 먹을수록 착하고 나쁜 것의 경계가 흐려짐을 경험한다. 모든 인간이 착하기도 하지만 나쁘기도 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렇다.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했던 것처럼, 옛 말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했던 것처럼, 나쁘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감춰두고 혼자서 그 마음과 싸울 뿐 나도, 남도 그런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의 단순한 판결문에 사이다처럼 속이 시원했나 보다. 어른들이 사는 세상이 너무 복잡한 세상이라 그렇다. 얽혀있는 이해관계없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라고 땅! 땅! 하고 못 박아버리는 아이의 단순함이 정의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쁜 것은 나쁜 거야.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진실되고 합리적이며 정의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