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다르기에 다시 바라본 내 눈의 색깔이 특별하다.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딸이 두 살 정도 됐을 즈음, 친구와 놀다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Abby(가명) 눈에 왜 블루베리가 있어?"
태어났을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가 자신과 다른 파란 눈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제와 새삼스러웠나 보다. '영어사람친구'(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와 놀고 있지만 아직 영어는 못하는 둘째 딸 대신 Abby네 엄마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표현이라며 Abby 엄마의 눈이 하트가 된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우리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렇게 말한다.
"Then your eyes are chocolate!" (그럼 네 눈은 초콜릿 눈이네!)
금발에 파란 눈, 흑발에 검은 눈을 가진 아이가 서로의 눈을 보며 깔깔 웃는다.
나와 너의 다름. 다름이 그들을 웃게 한다. 다르기에 더 특별한 순간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남과 다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자랐다. 부설초등학교를 다닌 탓에 초등학교 때부터 교복을 입었던 나는 집 근처 학원에 갈 때는 꼭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나 혼자 교복을 입고 튀는 것이 싫었다. 중학생이 되자 모두 같은 교복을 입었고 귀밑 3센티로 머리를 잘라야 했다. 으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불만 비슷한 것도 없었다. 교복 아래로는 비슷한 양말과 신발을 신었고 비슷한 가방까지 맸다. 남과 다른 모습은 또래 친구들에게는 나대는 애, 교사에게는 반항아로 보이게 할 뿐이었다. 고등학생 때라고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나도 좋아했고 락발라드가 유행하면 듣지도 않던 락발라드를 찾아서 들었다.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나의 직장이 된 학교라는 집단은 튀는 교사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여교사들은 다 똑같은 검은색 통굽 슬리퍼를 신었는지 모르겠다. 몇몇 나이가 많은 여교사들은 급식실에서 원어민 미국인 교사를 마주칠 때마다 수군거렸다. '어머, 저렇게 큰 가슴을 다 내놓고 다니네. 젊은 사람들이 가서 말 좀 해! 한국에선 저렇게 입는 거 아니라고.' 다 큰 여자가 양갈래 머리를 했다고, 옷이 너무 튄다고, 화장법이 이상하다고, 팔에 털이 많다고 한 마디씩 쑥덕거렸다. 다르다는 것은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내가 자라온 곳, 내가 자라온 시대에서 '다름'은 특별함이 아니라 '이상함'이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캐나다는 온통 다른 사람들의 집합이다. 모두 캐나다에 살고 있어도 서로 다른 뿌리의 국적을 가졌다. 모두가 영어로 말하지만 중국식 영어, 인도식 영어 등 저마다의 억양을 가졌다. 인종과 언어뿐이겠는가. 엄마와 아빠가 만든 가족도 있지만 두 명의 엄마가(혹은 두 명의 아빠가) 이룬 가족도 있다. 거리에서 보닛(메노나이트 여성이 쓰는 모자)을 쓴 사람, 히잡을 쓴 사람, 키파(유대인들이 쓰는 납작한 모자)를 쓴 사람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곳에 세계 모든 나라의 음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먹는 음식에 따라 사람들의 체취마저 다르다. 아무리 작은 골목 식당을 가더라도 베지테리언 메뉴, 할랄푸드가 없는 곳이 없다. 나의 딸들은 외모도, 종교도, 문화도, 음식도, 신념도, 심지어 체취까지도 온통 다름 투성인 곳에서 자라고 있다.
'Our differences make us special.'
(다름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딸이 다니는 학교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볼 때마다 생각에 빠진다. 이곳은 왜 우리는 모두 달라도 된다고 가르칠까. 다름이 어떻게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걸까.
딸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온갖 다름에 노출되었다. 한 교실 안에도 인종, 국적, 언어, 기념하는 공휴일, 비자 상태, 도시락 메뉴 등 수많은 다름이 존재한다. 아이는 타인과 자신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엄마, 오늘 라마단이 끝났대. 나도 Nusaiybah(무슬림 친구)처럼 헤나 해 보고 싶어."
"엄마, Mia(엄마가 에콰도르 사람인 친구)가 스페인어로 생일 축하노래 부르는 법 알려줬어. 들어볼래?"
"엄마, Jaemar(자메이카에서 이민 온 친구)가 자메이카에 가서 학교에 안 왔어. 자메이카도 캐나다야?"
"엄마, 친구들이 나랑 Raymond(중국인, 학급 내 유일한 아시아인 친구)랑 닮았대."
"엄마, 엄마도 'BTS' 알아?"
"엄마, 우리는 South Korea야, North Korea야?"
딸아이는 타인에 대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궁금해했고 아시아에 대해 궁금해했다. 자신의 엉덩이에 있는 파란 몽고반점이 친구들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놀랍고 재밌어했다.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 궁금해했다. 아이는 그러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해소해 가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으면서 고민이 많았다. 여러 가지 종류의 다름에 노출되어 아이의 정체성이 흐려질까 봐 겁났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모로서 원치 않는 가치관이 아이에게 물들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쏟아지는 다름 속에서 자신을 더 뚜렷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친구의 블루베리 눈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자신의 눈이 초콜릿 눈인 것을 알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남과 비슷하고 싶던 나도 이 곳에서는 눈코 입부터 다름 그 자체다. 나와 너무나 다른 이 곳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성찰한다. 자아정체성 형성의 꽃이라 불리는 사춘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캐나다에 와서야 진정 나를 발견해 가는 느낌이다.
Our differences make us special.(다름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아이의 학교 교실에 붙어있던 이 말은, 우리의 서로 다름은 나를 뚜렷하게 만들고, '뚜렷한 나'들이 모여 있기에 우리가 다채로워진다는 뜻인 것 같다. 너와 내가 다르다고 내가 헝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와 우리가 특별해진다. 블루베리 눈과 초콜릿 눈이 다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