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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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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ul 11. 2020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 적성에 딱 맞습니다.

슬기로운 '아싸'생활

 딸아이는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이미 집에 갈 생각이 없다. "엄마, Mia랑 놀아도 돼?" 거절할 수가 없다. 스쿨버스에서 함께 내린 Mia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please."를 외치고 있다. 학교가 끝나면 집 현관문을 한 번 열어보지도 않은 채 집 앞에 가방을 던져두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논다. 동네에서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고. 그러다 은근슬쩍 친구네 집에서 저녁도 먹고 온다.

학교에서 돌아온 오후 3시, 온 동네 아이들이 친구네 집, 앞마당에 모였다.


 동네에 또래 친구가 많은 것이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친구와 잘 어울려 노는 딸들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보기 좋은 장면에 애로 사항이 하나 있다. 엄마인 내가 '내향적인 집순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만 10세 미만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밖에서 놀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엄마인 나도 함께 나가야 한다. 딸 친구네 엄마도 같은 이유로 밖에 나와 있다. 엄마들끼리 마주치면 한 마디씩 해야 하고, 안부도 물어야 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 어쩌다 덜 친한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날이면 정말 곤혹스럽다. 물론 나중에는 아이들을 매개로 동네 엄마들끼리 좋은 친구가 되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그렇지. 내향적 집순이는 친구를 매일 만나고 싶지는 않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에너지 충전이 아니라 에너지 소모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뛰어노는 건 딸인데 엄마가 기운을 쏙 빼고 들어온다. 애들은 ‘인싸’인데 엄마가 '아싸'다.

무더웠던 날, 아예 본격적으로 수영복까지 꺼내와 다 같이 모여 물놀이를 했다.


 그러다 지난 3월 말. 캐나다에도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캐나다는 온 도시를 셧다운(shut down) 시켰다. 전 국민 외출금지령이나 다름없는 격리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회사, 학교, 치과, 미용실, 식당이 문을 닫았다. 정부는 장을 보러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삼가라 했다.

 내심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집순이 엄마는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도 딱히 힘든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아이들과 해 보고 싶었던 홈스쿨링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유튜브로 '홈트'도 한다. 식당이 문을 닫으니 요리실력이 날로 늘고 식비가 절약된다. 남의 집은 미용실이 문을 닫아 집집마다 장첸 한 명, 추노 한 명씩 끼고 산다는데 나는 집에 있는 이발기로 남편 머리카락도 슥슥 밀어준다.

 남편 역시 학교와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서 꼼짝없이 집에 갇혔다. 남편은 답답해하지 않냐고? 우리 남편은 아싸 중에 아싸, 집돌이 중에 집돌이다. 7월 현재, 격리 생활 세 달째가 되어가니 이제 좀이 쑤시기 시작한 나와 달리, 남편은 여전히 그만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가는 중이다. 'Please do not disturb!(방해하지 마세요)'를 서재 방문에 써 붙여두고 더더욱 혼자 있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부가 쌍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성에 딱 맞다.


 학교도 못 가고 집 안에 갇혀(?) 있는 '인싸' 두 딸들의 생활은 어떨까. 아이들은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슬기로운 격리생활 중이다. 예전에는 늘 각자 친구랑만 놀고 싶어 하고, 자매끼리는 함께 하는 놀이 자체가 성립이 안됐다. 그런데 외출금지가 시작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2살 어린 동생은 어떻게 하면 언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함께 놀 수 있는지 터득했다. 2살 많은 언니는 어떻게 하면 유치한 동생을 잘 구워삶아 자신의 놀이에 참여시킬 수 있는지 터득했다. 하루 종일 에어컨이 켜진 방 안에서 문을 닫아둔 채 둘이서 복닥거리며 잘도 논다. 보드게임도 하고, 학교놀이도 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얼마 전에는 둘이서 놀거리를 찾다 못해, 멀쩡한 양말을 잘라 인형을 만들고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동생은 인형극에 끼워주지도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공룡 역할을 맡겼다. 언니가 큐 사인(sign)을 주면 동생이 공룡소리를 낸다. 자매의 인형극을 보고 있자니 둘이서 어찌나 쿵짝이 잘 맞는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고마울 지경이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아~ 엄마는 집에 친구가 없어서 너무 심심해. 너희는 좋겠다. 집에 친구가 살아서!" 하며 너스레를 떨어주는 일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집순이, 집돌이의 시대를 몰고 온 것 같다. 인싸의 시대는 가고 아싸의 시대가 왔다. 집순이 엄마는 집에서 홀로 글을 쓰며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다. 아싸 아빠는 온 가족이 한 집에 하루 종일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임을 느끼는데 충분해 보인다. 우리 집 인싸들도 '슬기로운 아싸 생활'을 위해 힘쓰는 중이다. 이 참에 가족끼리 더욱 슬기롭게 뭉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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