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덮었던 이불을 탁 털어 정리했다. 오고 가며 깨끗한 침대가 보일 때마다 '잘했네. 잘하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세상 깔끔하게 잘하지'하며 셀프로 칭찬했다. 다음 날은 스트레칭을 추가했다. 그다음 날은 창문 열어 환기도 추가. 하루에 하나씩, 조금씩. 나를 칭찬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만든다. 그 다음다음 날은 이불 정리, 스트레칭, 창문 열기 후, 세수도 멀끔하게 할 테다. 글로 써 놓고 보니 참ㅋㅋ 서른이 넘어서 아침에 세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앉았다.
작년 3월부터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과 매일을 붙어있었다. 1년 반 동안 아이들이 친구와 만나서 놀았던 시간을 모두 합쳐도 24시간은 될까.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엄마인 나도 너무 불쌍하다. 코로나 너 정말 밉다.
안 그래도 하기 싫던 설거지가 더욱더 격렬하게 하기 싫다. 쌓여간다. 사용할 숟가락, 젓가락이 없어 다음 끼니가 되어서야 억지로 했다. 우리 집은 왜 식기세척기가 없는가를 고찰하며 그릇에 퍽퍽 화풀이. 아무리 찜부럭 해도 가족을 위해 날마다 세 끼 밥을 차려내야 한다. 대충 주고 나면 미안해서 스트레스, 정성 들여주자니 무기력한 내 몸이 감당이 안 돼서 스트레스. 맨날 스시, 피자, 햄버거, 쌀국수 말고는 사 먹을 것도 없는, 돈 쓰고도 만족이 안 되는 이 놈의 캐나다! 욕을 욕을 하며 꾸역꾸역 끼니를 차렸다.
하루 내내 집에 있는데 눈이 닿는 곳마다 스트레스니 매일이 불평불만이었다. 어질러진 집구석만 들여다보며 '할 일 태산, 할 일 태산'. 주문처럼 구시렁대며 스트레스를 사서 받았다. 이런 내가 나도 싫고, 가족도 싫고, 캐나다도 싫고, 이런 와중에 태평하게 글을 무슨 글, 브런치도 싫고. 무엇보다 너! 코로나가 제일 싫고. 장난감부터 책장, 옷장, 부엌살림까지 집 안의 오만 것들을 뒤집어엎으며 정리해 보지만 속 시원한 마음은 그때뿐. 도대체 매일매일 습관처럼 해야 하는 자질구레하는 일들은 좀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이불 정리. 그거 딱 하나만 하자'고 생각한 것은 두 딸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즈음이었다. 온통 '세상에서 제일 힘든 나'에게만 집중되어있다가 문득, 그런 나를 지켜보는 딸의 눈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도록 민망스러웠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내 상황을 이해하는 남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딸들 눈에 한심해 보이는 건 너무나 민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불부터 탁 털어 정리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바둑기사가 수를 복기하듯 하나씩 차근차근 회복해본다. 그리고 아침 세수마저 결심이 필요한 지금의 나에게 아주 사소한 것부터 폭풍 칭찬을 시작해 본다. "거봐! 잘하지! 한결 낫지! 잘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