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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an 16. 2021

야, 그건 Ms.Moon도 알겠다!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바로, 교사 파업 소식. 학교 문이 닫혔으니 캐나다 학교에 배정받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고, 학교 현장에 무작정 투입되기 전에 스스로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예정보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교사 출신 원어민 멘토와 매일 만났다. 영어는 물론이고 캐나다 교육시스템과 사회 전반에 대해 배웠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을 때쯤, 드디어 학교가 정상 운영되고 학교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에 부딪혔다. 바로, 세대차이. 고학년 아이들이 하는 대화를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 하면 줄임말이나 급식체 정도였을까. 뿐만 아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 캐나다 초등학생들이 즐기는 문화를 모르니 뭐라고 하는지 1도 모르겠다. 말하는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면서 Hashtag, Hashtag(해시태그) 그러길래 그게 뭐냐고 물어봤다. 손가락으로 #모양을 만들며 설명해 준다. 그래도 어렵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이 널리 사용되지 않을 때다. 해시태그라니.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단어다.


하지만 캐나다 초등학생 앞에서 못 알아듣는다고 창피할 때가 아니다. 6개월짜리 아이와 친정엄마까지 데리고 온 해외연수인데! 그래, 어차피 나는 외국인. 모르는 건 계속 물어보기로 작정했다.


이건 뭐니, 저건 뭐니, 너 방금 뭐라 그런 거니, 그거 스펠링이 어떻게 되니.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기회가 마땅치 않을 때는 들리는 대로 녹음이라도 해 두었다. 멘토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집에 가서 찾아볼 수도 있으니까. 비슷한 발음이 어떤 단어가 있는지, 상황 상 어떤 말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려고 나가는데 복도 저 쪽에서 내 이야기가 들린다.


"Hey! Even Ms.Moon knows it!”

(야, 그건 문쌤도 아는 거잖아!)


왜 그런 말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내가 바로 그 '문쌤'이다. 학생들 붙잡고 말을 배우는 외국인 문쌤. 정말로 문쌤이 알면 모두가 아는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은근히 무시하는 말로 떠 보느라 한 말인지. 본인들에게는 너무 쉬운 단어들을 어른이 꼬치꼬치 캐물었으니 그럴 만도 한 건가. 아무튼 문쌤은 창피한 상황인 거다.


그 말을 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당황하며 내 눈을 피했다. 나도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던 참에 고개를 돌려주니 땡큐다. 나도 창피하니 못 들은 척한다. '그래, 너 영어 잘해서 좋겠다. 너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좋겠다, 짜식아.'


창피했던 만큼 늘겠지. 그렇다고 모르고 넘어갈 순 없잖아. 내향적이고 낯도 가리는 성격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배우러 왔으니 배워야 한다는 마음 하나가 얼굴을 두껍게 만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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