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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01. 2021

밥 안 하는 전업주부

요리를 싫어하는 캐네디언 친구가 있었다. 살림하는 주부라면 남의 집 부엌살림만 봐도 요리하는 주방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식구 수에 비해 단출한 냉장고,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한 싱크대. 그녀는 전업주부지만, 정말로 요리를 하지는 않았다.


"Cooking is not my thing."

(요리는 내 적성에 안 맞아.)


그녀가 요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거 딱 하나다.

요리가 my thing이 아니라서.




나도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세 끼를 차려내고 있다. 재미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의 책임감으로 한다. 요리는 마치 직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분장 중 하나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업무는 즐겁지 않다. 하기 싫을 때가 더 많다. 메뉴를 결정하지 않은 날은 식사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미뤄둔 숙제를 생각하듯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충 냉동식품을 꺼내 데워주는 날에는 정성스럽지 못한 식사에 죄책감이 든다.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혼이 나고 있다.


팁을 얻으려 보기 시작한 살림왕 주부들의 유튜브 영상은 쉽게 흥미가 떨어졌다. 화려한 플레이팅을 겸비한 그들의 영상에는 보이지 않는 소비와 시간과 노동이 숨어있다. 그럴만한 돈이나 에너지가 없는 내게는 한두 번이면 족할 눈요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선별된 영상이 가지는 시간적, 공간적 함축을 망각한 채 그들의 일 잘함과 나의 그렇지 않음을 비교하기도 했다. 영상 속 그들의 식탁은 내가 사는 일상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만큼 부지런했다.


싱크대 앞에만 서면 만년 대리가 된 기분이다. 사표낼 거 아니면 해내야한다. 딱히 잘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일을 하러 하루에 세 번 부엌으로 출근한다.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불쾌한 자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싱크대 앞에 서는 것. 이것이 내가 밥하는 일을 전업주부의 필수 업무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친구네 가족과 함께 한 점심식사. 치즈를 넣은 토르티야 롤에 야채, 과일을 곁들인 초간단 점심.


요리를 안 한다는 캐네디언 친구는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맥도널드에 간다. 맛있으면서도 간편한 냉동식품을 찾았다며 기뻐한다. 주말에는 남편이 피자도 만들고 스테이크도 굽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식구들 먹거리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설탕 함유량이 적은 시리얼 찾고, 통밀로 만든 빵을 사며, 건강한 재료를 사용한 냉동식품을 산다. 양념을 만들고 볶거나 찌지 않을 뿐 오이, 당근, 파프리카, 샐러리, 브로콜리 등 다양한 야채를 시판 소스에 찍어 생으로 먹는다. 그녀는 단지 요리에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할 뿐이다.


요리에서 절약한 그녀의 에너지는 집을 끝내주게 단장하고 정리하는 데 사용한다. 그녀의 집은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도 현관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는 집이다. 늘 정리되어있다. 중고 가구를 싼 값에 사서 부티끄 호텔처럼 멋스럽게 매치한다. 세탁실에는 라벨링 된 빨래통이 오와 열을 맞추고 있다. 몸에 꼭 맞는 맞춤옷처럼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이 공간에 딱 떨어진다.


공간을 꾸미고 정리하는 것이 그녀의 thing임이 분명하다. 요리를 하지는 않지만 늘 집을 늘 깨끗하게 유지한다.


요리하지 않는 전업주부 그녀, 직무유기일까?



잡지에 나오는 집 같지만, 그녀의 집에 놀러갈 때마다 일상의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아내의 상차림에 불만 있는 남편들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아내가 차린 식탁 사진을 첨부하며 전업주부 아내의 직무유기를 고발한다. 맞벌이라면 몰라도 전업주부라면 너무 했다는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요리도, 청소도, 살림도 균형 있게 잘하는 오각형 능력치의 주부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썰 때마다 튕겨나가는 당근을 도마로 복귀시키며 요리는 내 thing이 아니라는 친구의 말을 되내어본다. 조금 편하게 가도 괜찮을까? 아니면 정말 사람들의 말처럼, 밥 안 하는 전업주부는 일 안 하고 남편 월급만 축 내는 월급 빌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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