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안전은 부모가 직접 책임지는 나라
한국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5년 내내 등굣길 교통지도를 위해 일명 '녹색 어머니회'를 모집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맞벌이 시대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사회변화에 발맞추어, 학생들의 등, 하굣길 안전과 관련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일자리 창출사업의 일안으로 지자체 단위로 교통안전도우미를 모집하여 각 초등학교에 배치하고 있다. 또 한 지역에서는 운전자들의 과속 및 부주의를 막기 위해 학생들의 책가방에 형광색 안전 덮개를 씌웠다. 그 형광색 덮개에는 스쿨존 규정속도인 '30'이라는 숫자가 크게 적혀있다.
이렇게 등, 하굣길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한 아이가 스쿨존에서 안타깝게 사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아이의 이름을 딴 법이 통과되었고 스쿨존 내 과속단속카메라, 주행차량 속도 표시 설치 등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이 법이 특별범죄 가중처벌법으로 정해져 여론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법 개정을 위한 청원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러 입장의 말들이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학생들의 안전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내 스쿨존 과속 벌금은 400~2000불(약 40만 원에서 200만 원)이고 6점의 벌점이 부과된다. 캐나다에서는 벌금도 벌금이지만 벌점을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 면허증 종류마다 다르지만 6~9점의 벌점이 모이면 일정기간 동안 면허가 정지된다. 당연히 보험금도 인상된다. 또 모든 스쿨존에 스쿨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표지판, 주행차량 속도 표시 전광판이 있다. 스쿨존 내 불법주차는 캐나다에 사는 6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도 단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분 후면 여지없이 자동차 앞유리에서 불법주차 딱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쿨버스에 대한 법 또한 매우 엄격하다. 스쿨버스가 학생들의 승하차를 위해 멈추면 그 뒤를 따라오던 차량들은 물론이고 반대편 모든 차량들도 주행을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이를 어기고 지나가면 스쿨버스 운전자가 바로 그 차량을 신고할 수 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벌금과 벌점이 부과된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마련된 교통안전제도 외에도 캐나다의 어린 학생들이 도로 위에서 안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캐나다의 어린 학생들은 어른 없이
혼자서 등, 하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child and family service에 따르면 만 10세 미만 학생들이 어른 없이 '방치'될 경우, 경찰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4, 5학년까지는 아이들이 낮이든, 밤이든 집에 혼자 있을 수 없고, 부모가 아이들만 차에 두고 장을 보러 가서도 안된다. 집이든, 차이든, 아이를 혼자 두면 주변 이웃이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이 한동안 가정 안에 안전에 관한 이슈는 없는지, 부모의 학대 흔적은 없는지, 부모가 책임감을 가지고 양육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한다.
Safe route to school program에 따르면 만 10세 미만 학생들은 혼자 길을 건너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고, 사회 분위기 또한 적어도 4, 5학년은 되어야 혼자 등, 하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엄마 인생은 라이드(ride) 인생'이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등교도, 하교도, 심지어 하교 후 방과 후 활동들도 모두 엄마들이 직접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많은 경우에는 라이드 하다 반나절이 지나간다. 나도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낸 첫 해에는 학교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잠이라도 들어 픽업 시간을 놓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모임을 하다가도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애데렐라’ 엄마들처럼 2시 반에서 3시가 되면 모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국에서 모든 초등학생 등, 하교에 어른이 동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그렇지않아 보인다. 한국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들이 캐나다에서는 가능하다. 사회인식과 사회제도가 이를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탄력적인 근무시간,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눈치 볼 필요 없는 육아휴직제도, 아이를 다 키운 후에도 얼마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취업의 길, 엄마 아빠 구분 없는 육아, 야근과 회식이 없는 예측 가능한 퇴근시간, 일하는 부모를 위해 각 학교마다 배치된 before/after school care(한국의 방과 후 프로그램 같은 개념으로 학교 시작시간 전, 후 모두 보낼 수 있는 유료 프로그램), 학교에서 1 mile이상 거리에 사는 학생들이 탈 수 있는 스쿨버스 등.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또한 조부모 육아, 육아도우미, 베이비시터 등 육아에 관련하여 한국과 비슷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모가 자기 자녀를 책임지고 키우기 훨씬 수월한 사회 환경임은 분명한 것 같다.
처음에는 시간 맞춰 딱딱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한국의 학원차 시스템이 부럽기도 했다. 또 아이가 만 10세가 될 때까지 모든 순간에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학원차 안전사고소식 그리고 어린이 성범죄 소식을 들으면 너무나 아찔하다.
내 아이의 안전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어린이를 도로교통약자라고 하면서
약자가 혼자 길을 걷고,
혼자 도로를 건너게 해도 되는 걸까?
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멀리 다녔다. 1학년 때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혼자 하교했다. 캐나다 사회에 익숙해지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이 어떻게 버스를 혼자 타고 다녔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내가 한국에 간다면 내 아이는 절대 혼자 등, 하교를 하도록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내 아이를 혼자 밖으로 내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도 혼자 등하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 때문이지 모를, 어린이 안전에 대한 한국의 어린이 안전이 너무나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