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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Oct 02. 2020

잘 먹고 잘 마시는 교실


"선생님 물병 안에 뭐 있어요? 선생님은 왜 맨날 물을 마셔요?"


한국 초등학교 근무 시절, 교탁 위에 늘 올려져 있던 텀블러는 제자들의 호기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가끔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일부러 텀블러 심부름을 부탁하기도 했다.


"선생님 꺼 텀블러 한 번 헹구고 따뜻한 물 좀 떠다 줄 사람?"


그러면 아이들은 별 것도 아닌 선생님의 텀블러를 들고 가며 즐거워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개인 물병을 들고 다니는 캐나다 어린이들을 보니 그때 그 제자들의 호기심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학생들이 개인 물병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더운 여름에 가끔 생수병을 얼려오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매일 물병을 챙겨 다니며 물을 마시는 아이들은 없었다. 체육시간 후, 갈증이 나면 급식실로 뛰어가서 물을 마셨고, 더운 여름에도 수업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복도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제자들이 호시탐탐 눈독 들이던 물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간식 도시락. 첫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심한 입덧 탓에 과일 같은 간단한 간식을 들고 다녔다. 집에서 싸온 간식을 꺼내면 여지없이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왔다.


"선생님, 뭐 먹어요? 배고파요. 한 입만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지 않고 등교한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오전 내내 배가 고프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에 질문이 생겼다. 왜 아이들은 학교에 물병이나 간식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혹은 가지고 올 생각 자체를 안 했을까?) 또 교사인 나는 왜 가져오라고 말할 생각을 못했을까? 학교의 아이들이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도 정해진 시간까지 참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개인 물병이나 간식 도시락이 교사만의 특권도 아닌데 말이다.


원할 때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책상 위에 물병을 올려둔 캐나다 초등학교의 수업시간. 원한다면 체육시간에도 들고나갈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니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학생들도, 어른들도 많은 사람들이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니며 물을 마신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건물 어디든 설치되어있는 수도에서 물을 담아간다.


캐나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면 준비해야 할 것은 딱 4가지다. 책가방, 도시락 가방, 인도어 슈즈(실내화) 그리고 물병. 유치원 때부터 캐나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책가방 옆 주머니에 개인 물병을 꽂아서 가지고 다닌다. 가지고 온 물통은 교실 책상 위에 올려둔다. 수업시간이든, 체육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원할 때마다 언제든 물을 마신다. 아마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라면 선생님의 텀블러가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캐나다 초등학생의 전형적인 도시락. 오전 간식시간에는 주로 과일이나 쿠키를 먹고, 점심시간에는 샌드위치를 먹는다.


간식 도시락도 그렇다. 캐나다 초등학교에는 2번의 뉴트리션 브레이크(Nutrition Break)가 있다. 그중 하나는 점심시간이고, 나머지 하나가 오전 간식시간이다. 오전 간식시간이 되면 교사와 학생 모두 집에서 싸온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 캐나다의 아침식사는 주로 오트밀이나 시리얼로 아주 간단한 편이다. 그래서 오전 간식시간에 그래놀라 바, 과일, 견과류 등으로 부족한 영양소와 열량을 섭취한다.


20년도 넘은 옛날, 필자가 초5였을 때 우리 반에만 간식시간이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원하는 사람은 집에서 간식을 가져와 우유급식시간에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 사 먹지 말고 아예 집에서 건강한 간식을 싸와서 먹으라고 말이다. 일 년 내내 우유와 함께 찐 감자나 고구마, 과일, 빵 등을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충분한 열량 섭취가 꼭 필요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건강한 간식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있는 캐나다 초등학교 어린이들


이것은 분명 교육적으로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학급경영 중 하나라고 말하기에도 너무나 거창하게 느껴질 만큼 사소한 것이다. 그저 학생들이 원한다면 물병과 간식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고 안내해 주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가장 간편한 방법이자 아이들의 건강유지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충분한 수분 및 영양섭취는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학교 정수기 이용을 금지하고 개인 물을 가지고 다니도록 안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특수한 상황이나 이유가 아니더라도 개인 물병을 사용하는 것이 위생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좋은 점이 많다.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다. 물병을 가지고 다님으로써 더 자주 충분한 수분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식의 경우에도 귤이나 바나나, 요거트처럼 간단한 것을 챙기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간식을 챙겨 가도록 하면 기본생활습관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고학년의 경우에는 실과 시간에 배운 대로 전날 밤에 감자나 계란을 직접 삶아 가져 가는 것도 좋은 생활 공부가 될 것이다.


웰빙(well-being)의 시작은 잘 먹고 잘 마시는 것이 아닐까. 건강은 지식으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간편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웰빙 습관 형성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커버 이미지 출처: 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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