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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Aug 20. 2020

건강하게 쉬는 법 배우기

"Go get some fresh air."
(나가서 신선한 공기 좀 마시고 와.)


캐나다에 살다 보면 어디서든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많은 캐네디언들이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일광욕을 하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을 즐겨한다. 아무리 작은 아파트라 해도 창문 없이 뻥 뚫린 발코니가 있다. 작은 공간이라도 작은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쉼의 방식은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형성되어 온 것 같다. 캐나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매일 학생들을 바깥으로 내 보내기 때문이다.


리세스(Recess) 시간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은 매일 하루 두 번씩 이루어진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주로 오전 간식을 먹은 후 15분, 점심을 먹은 후 15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는 전교생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가서 햇빛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



이 시간은 한국 초등학교의 '중간놀이' 시간과 비슷하지만 그것과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모든 학생이 더우나 추우나 매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거나 영하 20도 이하로(지역 및 학교마다 정해진 기온이 다르지만)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한, 아이들은 매일 밖으로 나간다. 심지어 어린이집(daycare 혹은 preschool)의 4세 미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교육기관에 속한 모든 어린이들은 캐나다의 매서운 추위에도,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도 매일매일 바깥에 나간다. 아이들은 더우면 덥게, 추우면 춥게 온 몸으로 날씨를 느낀다.


캐나다 동부의 겨울.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고 눈이 어마어마하게 오지만 거의 매일 야외 리세스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날씨에 맞는 옷과 액세서리를 준비하는 것이 학교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여름에는 선글라스와 모자, 겨울에는 스노 팬츠(snow pants), 스노부츠(snow boots), 방수 장갑 그리고 털모자. 비 오는 날에는 장화, 스플래쉬 바지(얇은 방수 바지) 그리고 방수재킷이 필요하다. 날씨가 좋지 않다고 실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궂은 날씨에도 야외에서 건강하게 놀 수 있는 복장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옷가지들은 코트 룸(coat room)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보관한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겨울에는 립밤, 여름에는 선크림 같은 물건도 보관할 수 있다. 아이들은 매일 날씨에 따라 필요한 복장을 스스로 골라 갖추고 나간다. 리세스 시간이 끝나면 입었던 옷을 정리하고 인도어 슈즈(indoor shoes)로 갈아 신는 것도 학생의 몫이다. 이러한 기본생활습관 형성은 초등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캐나다의 어린이들은 매일 하루 두 번 리세스 시간마다 날씨에 맞는 복장을 스스로 골라 갖추고 정리하는 기본생활습관을 연습하는 셈이다.


특히 저학년의 경우에는 날씨에 맞는 복장을 갖추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 하지만 만 4살 유치원 교실에서도 교사가 아이들을 일일이 도와주지 않다. 최대한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꼭 준비시켜야 하는 것이 스스로 옷 입고 벗기, 지퍼 올리고 내리기, 신발 갈아 신기다. 어떤 교사도 알파벳이나 숫자를 익혀오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교사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신 바깥에서 뛰어놀아도 좋을 실용적인 옷,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입고 벗기 쉬운 옷을 준비해 줄 것을 권한다.(예를 들면, 끈으로 된 운동화보다는 벨크로 운동화, 하이탑 운동화보다 슬립온, 단추보다 지퍼로 된 재킷) 그렇게 해야 학교에서 리세스 시간마다 스스로 복장을 갖추고 정리하는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초등학교의 고학년(위)과 저학년(아래) 교실의 coat room.


두 번째는 교사의 관여가 없는 자유시간이라는 점이다.


캐나다 초등학교의 리세스 시간은 한국의 중간놀이 시간처럼 전교생이 함께하는 체조나 놀이가 정해져 있지 않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교사 한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관리를 하지만 학생의 놀이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모든 학생들은 학년에 따라 안전하게 구분된 장소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은 또 다른 활동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관여가 없는 대신 저학년이 놀 수 있는 공간과 고학년의 공간은 안전을 위해 펜스로 구분되어 있다.
농구골대가 있고, 피구 라인이 그려져 있는 고학년 운동장
Hopscotch(팔방 치기) 같은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땅에 다양한 모양의 선을 그려놓은 운동장 한편


그런데 어떤 학교 운동장에는 놀거리들이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인 학교도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무작정 걷거나 달리며 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서 있거나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리세스 시간은 신체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세스 시간에는 햇빛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나름의 방식으로 머리와 몸을 쉬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충분한 햇빛에 노출되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피부가 하루 20분 이상 햇빛을 충분히 쬐어야 비타민 D가 합성된다. 이는 아이들의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각종 성인병에 노출된 위험을 낮추며, 뼈의 건강, 계절성 우울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리학적 요인, 실내 활동 부족 등의 이유로 많은 어린이들이 혈중 비타민D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습관처럼 밖으로 나와 햇빛을 쬐는 캐네디언의 모습에서, 리세스 시간을 보내는 캐나다 어린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신체활동을 하든, 아니면 가만히 앉아있든, 밖에 나와 햇빛을 쬐고 바깥공기를 마시려는 그들의 건강한 쉼의 방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리세스 시간을 통해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연습하고, 건강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지식을 배우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쉬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사와 부모들이 학습에 대한 고민은 많으나 건강한 쉼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것 같다. 매일 충분한 햇빛을 쬐고 바깥공기를 마시며 몸과 마음에 건강한 휴식을 주는 것. 이것이 결국에는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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