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후반에 종종 무너지는 이유, 대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세상을 살면 살수록 인간에게 건강한 몸, 강한 체력이 얼마나 소중한 자신인지 알게 된다. 캐나다에 살다 보면 나보다 훨씬 적게 먹으면서(캐네디언은 정말 생각보다 너무 적게 먹는다!) 나보다 훨씬 튼튼한 몸과 강한 체력을 가진 캐네디언들을 많이 본다. 처음에는 '이건 다 유전자 때문이야.' 라며 그들의 노력을 부정했다. 하지만 운동이 빠지지 않는 그들의 일상을 보면 결국 나의 체력 부족은 운동부족 때문이었음을 마주하게 된다.
캐네디언이 얼마나 운동에 진심인지 알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Stroller fitness다. 말 그대로 1세 미만 아기를 가진 엄마들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유모차를 이용한 피트니스 운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두 딸을 데리고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갔다가 이 운동을 처음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었다. '아기가 어려서 운동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아기와 함께 운동을 하면 되는구나!' 사실 육아를 잘하려면 엄마의 체력이 중요하지않나. 체력이 없으면 아이보다 쉽게 지치고 쉽게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더욱 운동이 필요한 건데 왜 아이를 낳으면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캐나다의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 방과 후 시간이 되면 각 동네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Recreation Centre)가 학생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북미에서는 보편적인 운동인 기계체조(Gymnastics)를 비롯해서 배드민턴, 배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무엇보다 캐네디언에게 빠질 수 없는 운동인 수영은 0세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연령별, 단계별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아이스링크 운동도 빠질 수 없다. 방과 후부터 저녁까지 아이스 스케이트, 아이스 하키, 피겨 스케이트를 즐기려는 아이들로 링크장이 가득찬다. 주말이 되면 곳곳에서 실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길거리 농구, 야구, 풋볼, 축구, 스케이트보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조깅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며 땀 흘리는 사람들이 도시를 가득 채운다.
방과 후에 공부보다 운동에 바쁜 캐나다 학생들을 보며 한국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떠올랐다. 가끔 한국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에 대한 소식을 뉴스에서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공부하는 어린이들에게 과연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그것을 버텨낼 수 있는 체력이 있는걸까? 결국 그들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버텨낼 수 없는 몸과 마음으로 눈 앞에 닥친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힘겹게 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모습이 어른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 나라 교육제도의 특성상, 모든 것이 대학 간 다음으로 미뤄진다. 그러나 막상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많은 어른들도 버텨낼 수 없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힘겹게 일하며 살아간다.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않다. 어렸을 때부터 습관화되지 않은 몸이 어른이 되었다고해서 갑자기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체력의 보호 없이는 어른에게도 정신력이 구호일 뿐인데, 아이들에게 버텨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캐나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소위 '날아다니는' 여자 어린이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체육시간에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면 여학생들은 운동장 벤치에 앉아 응원을 했다. 자라오면서 딱히 운동을 즐길 수 있을만한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아주 오랜 전 옛날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 필자가 교사로 근무할 때도 체육시간이 되면 여학생들은 어쩐지 소극적이다. 한두 명 운동신경이 특출 난 어린이도 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학생들은 소외되는 느낌이다. 물론 캐나다 초등학교에도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별을 기준으로 나뉘지는 않는다. 운동을 못하는 남자아이들도 많고, 운동을 잘하는 여자아이들도 많다. 그저 기량 차이로 나뉠 뿐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대체적으로 한국의 어린이들보다 체육활동에 적극적이고, 강하고, 탄탄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교사가 되어서도 체육시간은 늘 어려웠다. 특히 구기종목은 정말 자신이 없다. 물론 교육대학교에서 체육교육과 시간에 이론 및 실기를 배웠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농구나 축구를 해 본 적이 없는데 대학 4년 동안 몇 학점 배운다고 없었던 운동신경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결국 운동을 즐기며 자란 아이들이, 운동을 즐기는 어른이 되고, 운동을 하지 않던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운동을 생활화하기가 어렵다. 나는 그렇게 자라지 못해서 체육시간마다 작아지는 교사가 되었지만 내 딸과 내 제자들은 그런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초등학교의 체육수업은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생겨난 '스포츠강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때문에 교사가 수업 계획, 진행 및 평가를 하고 필요시에 스포츠 강사가 시범 및 보조 지도 역할을 한다. 여자 교사라고(혹은 운동에 자신이 없는 남자 교사라고) 스포츠 강사에게 수업을 맡겨서도 안되고 의존해서도 안된다. 분명히 초등교사로서 극복하기위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 마음껏 해낼 수 있도록 강한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성별과 상관없이 평생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게 해주는 것도 좋다. 그러려면 사실은 엄마인 나부터, 교사인 나부터, 운동에 더 마음을 열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체력을 기르고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과 운동이 균형 잡힌 건강한 삶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져온 건강한 체력으로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게 될 많은 인내의 시간을 넉넉히 버텨내는 그런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