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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Oct 25. 2020

내 감정은 내가 추스르기

학생들이 나와서 놀고 있는 캐나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 한 아이가 혼자 서서 훌쩍이고 있다. 주위를 살펴보니 담임교사는 다른 교사와 이야기 중이다. 혹시 울고 있는 아이를 못 봤나 싶어 알려주러 갔다가, 돌아오는 담임교사의 대답에 무안해졌다.


"나도 알아. 저 아이 지금 시간이 좀 필요해서 그래. 내버려 둬도 괜찮아."


보는 눈도 많은데, 학부모가 말하면 조금 민망해하거나 놀라며 아이에게 다가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를 내버려 두는 중이란다.


한국 엄마 감성으로는 조금 낯설었다. (캐나다 엄마들은 이런 것에 완전히 쿨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독립심을 기르는 게 중요한 북미권 교육이라도 그렇지,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담임교사가 운동장에 서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방치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캐나다 초등학교를 관찰하면 할수록, 그 교사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그들만의 감정교육이 눈에 들어왔다. 그 교사는 아이의 감정을 방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정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캐나다 초등학교 복도에 놓인 흔들의자들. 일명 'peace zone'


캐나다 밴쿠버, 한 초등학교의 복도 곳곳에 흔들의자가 놓여 있다. 이 의자는 혼자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어떤 이유로 감정이 격해지면 잠시 친구들 무리와 떨어져서 이 흔들의자에 앉는다. 혼자 의자를 앞 뒤로 흔들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이 차분해지면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이 학교에는 ADHD(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나 자폐성향을 가진 학생들도 꽤 있었다. 이렇게 건강상의 문제로 스스로 감정 통제가 어려운 경우에도 흔들의자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학습보조교사가 함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주거나 심호흡을 함께 하며 감정조절을 도와주었다.


의자를 흔들며 혼자 마음을 추스르는 학생들을 보니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라는 동화책이 생각났다. 주인공 소피는 엄마와 언니 때문에 화가 잔뜩 나,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리다 도착한 곳은 어느 숲 속. 숲 길을 걷다 보니 화가 가라앉고, 눈물이 찔끔 나온다. 눈물을 닦고 나니 나무와 바위와 고사리가 눈에 들어오고, 새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나무 위에 앉아 바람을 느끼고 일렁이는 물결을 보는 사이 소피의 화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흔들의자에 앉아 감정을 추스르는 아이들이 마치 숲 속을 걷는 소피 같았다.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복도에 걸려있는 사진이나 작품에 눈이 가고, 교실 속 선생님과 친구들의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그러다 보면 흥분했던 감정이 차분해진다. 감정이 진정되면 마음속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쉬워진다. 교사는 그제야 아이의 눈을 맞추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떤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금세 까르륵 웃으며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1부터 10까지, 천천히 크게 심호흡해보자."

"피젯 토이(Fidjet toy) 필요하면 줄까?"

피젯토이: 특별한 기능은 없지만 한 손에 쥐고, 반복적인 동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손 장난감. 예:스퀴시(좌 ⓒBuzzfeed), 스피너(우ⓒRBG)


“doodle(낙서) 공책에 낙서하다 올래?”

"모래시계 뒤집어서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보고 오는 게 어때?"

"눈 앞에 촛불이 있다고 생각하고, 불꽃이 꺼지지 않고 흔들릴 정도로만 열 번 천천히 불어봐."


위의 예시처럼, 흔들의자 외에도 교사들은 흥분한 감정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될만한 다양한 전략을 갖고 있었다. 저학년 교실의 경우에는 교실 한편에 피스 코너(peace corner)나 캄다운 코너(Calm down corner)까지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마음을 진정시켜줄 수 있도록 푹신한 쿠션, 피젯 토이, 낙서 도구, 모래시계 등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아, 아늑하게 꾸며놓은 공간이다.


이러한 환경이 가정이나 교실에 조성되어있다면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훨씬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누가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교실 한편에 마련된 peace corner ⓒHeidi Malloy(좌) ⓒNicile Roesch(우)


아이들이라고 스트레스가 없지 않다. 가족 및 친구와의 관계나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또한 학교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낯선 감정을 경험한다. 그 낯선 감정은 적절하게 표현되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적절하게 해소되어야 한다. 분노, 우울, 불안,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해서 혼자 소멸하지 않는다. 처리되지 못한 감정은 마음에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는 전두엽이라고 한다. 전두엽은 만 25세 전후가 되어서야 발달이 완성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어른들도 감정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어떤 어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하고, 어떤 어른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만 두다가 병이 나기도 한다. 또 어떤 어른들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 삼아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기도 한다. 세 가지 모두 결코 건강하지 않은 감정처리방법이다.


감정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조절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내 감정은 내가 추스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방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부모의 역할은 다양한 감정조절 전략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스스로 감정을 처리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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