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Sep 08. 2020

6교시 내내 책 읽는 교실

어느 날 아침, 캐나다 한 초등학교의 시간표를(아래 사진) 보고, ‘징글징글하네’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Reading, Reading 그리고 또 Reading. 수학과 음악 빼고는 모조리 읽기 활동이다.


이쯤 되면 캐나다 초등교육은
독서에 목숨 걸었다고 봐야 한다.



위의 시간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6교시 내내 무언가를 읽을 것이고, 참 다양한 방법으로 읽는다.


혼자 읽고(Reading),

수준에 맞는 책을 읽고(Guided Reading),

현충일을 맞아 국군장병에게 카드를 쓰기 전, 평화에 대한 책을 읽고(Postcard for Peace)

조용히 읽고(Silent Reading),

사회시간에 개척자에 대한 책을 읽고(Social Studies),

선생님이 읽어 주는 책을 듣는다.(Story)


읽기 종합 선물세트처럼 다채롭기도 한 캐나다 초등학교의 각종 독서교육 중, 특히 Guided Reading은 학교와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짜임새 있는 체계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Guided reading
(안내에 따라 읽기)


수준별 그룹으로 나뉘어 리더와 함께 책을 읽는 가이디드 리딩


가이디드 리딩은 문자 그대로, 안내자의 도움을 받는 수준별 독서교육이다. 학급을 읽기 수준에 따라 네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의 수준에 맞는 책을 교사가 선정한다. 각 그룹에는 읽기를 지도해 줄 안내자(리더)가 필요하다. 내가 참관했던 교실에서는 학습보조교사 1명, 학부모 2명, 그리고 담임교사가 리더를 맡았다.


학생들이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리더가 발음을 교정 해 주기도 하고, 어려운 어휘의 뜻을 유추하거나 책의 내용을 분석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책을 읽은 후에는 요약하여 나만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책에 등장하는 국어교과 문법 영역의 지식들도 함께 배웠다. (명사와 부사 찾기, 적절한 전치사 사용하기, 명사를 대명사로 바꾸기, 쓰임새에 맞는 문장부호 사용하기, 동음이의어 찾기 등) 


독서 후에는 읽었던 책을 통해 국어교과의 문법적 지식도 함께 배운다.


이 활동에서 무엇보다 교사로서 부럽고 놀라웠던 점은 이미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있는 교육 인프라였다. 가이디드 리딩에 활용하는 모든 책과 독후활동지가 학교 빈 교실의 벽면 가득, A-Z레벨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다. 이 자료는 교내 모든 학년에서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다. 꼭 가이디드 리딩이 아니더라도 학급에 있는 읽기 부진학생을 지도하기에도 얼마나 좋은 자료인지!


게다가 이 목록은 해당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활용하고 있고, 심지어 동네 도서관을 가더라도 흔히 구할 수 있다.


학교와 사회가 따로 놀지 않고, 학교와 사회가 공유하는 교육 인프라가 있다는 것.


방과 후 시간이나 방학 때도, 도서관만 가면 학교에서 하던 읽기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사회 안에 공교육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제 보니 캐나다 학교만 독서교육에 목숨 거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 사회 전체가 독서의 힘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수준별로 정리되어 있는 가이디드 리딩용 책과 독후활동지


이렇게 모든 학교와 사회를 아우르는 교육 인프라 전체를 한국으로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의 ‘틀’ 자체는 독서교육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독서는 주로 '스스로 읽기'로, 리더가 독서의 여정을 안내하며 함께 읽어주는 경우는 드물다. 또 1학년 한글 읽기나 3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 읽기야말로 개인별 수준 차이가 심한 영역이다. 학교 안에 학습부진학생, 다문화학생, 중도입국학생 등 다양한 수준의 독자가 존재한다. ‘안내자의 도움을 받는 수준별 그룹 독서’라는 가이디드 리딩의 틀을 적용하여 새로운 읽기 교육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학년 교실에서 와서 책을 읽어주고 있는 5학년 학생들 (Reading buddy)


이 글에서 언급했던 읽기 활동 외에도, 고학년과 저학년을 짝지어주고 함께 읽는 Reading Buddy, 부모와 함께 읽는 Home Reading, 유치원 적응을 위해 매일 아침 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자녀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5분 Noisy Reading 등, 캐나다의 초등학생들은 정말 갖은 방법으로 읽고 또 읽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캐나다 교육이 ‘책의 힘'을 얼마큼 믿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책의 힘을 믿는 캐나다의 교실수업은, 모든 교실에 텔레비전이 없을 정도로 영상 매체의 비중이 적은 편이다. 나의 교실 수업을 뒤돌아본다. 때로는 학습동기유발을 위해, 때로는 생생한 학습경험을 위해 미디어 매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대체 자료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텔레비전을 켜지는 않았을까? 현충일 계기교육을 위해 평화에 대한 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라면 현충일 계기교육을 어떤 식으로 계획했을까.


캐나다의 현충일(리멤버런스 데이)을 맞아 교사가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책.



나는 컴퓨터와 친한 교육을 하고 있나, 아니면 책과 친한 교육을 하고 있나.


캐나다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마치면 책과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의 교실에도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다양한 주제와 수준의 책들이 쌓여가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갖은 방법으로 학생들과 읽어보고 싶다. 나의 교실을 거쳐가는 아이들도 그렇게 책을 사랑하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




* 관련 글

http://brunch.co.kr/@ilae9213/17. https://brunch.co.kr/@ilae9213/28





    


이전 04화 한 문제만 풀어도 충분한 수학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