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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30. 2020

한 문제만 풀어도 충분한 수학 시간

캐나다 초등학교의 수학 수준은 파견근무 전부터 익히 들어왔다. 너무 쉬워서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천재로 만들어주는 과목이라고. 여차하면 언제든 계산기도 사용할 수 있으니 한국 학생들에게는 그냥 ‘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참관한 첫 캐나다 초등학교의 수학 수업이 미처 한 문제도 결론짓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그렇게 쉽다는 캐나다 초등수학인데 왜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한 채 1시간이 흘러버렸을까.


이유는 토론 때문이다.


문제. 넓이가 36 제곱센티미터가 되는 다각형을 최대한 많이 그려보세요.


한 학생이 나와 자신의 풀이 방식을 설명했다. 풀이를 설명하고 있는데 중간에 질문이 끼어든다.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손을 들고 한 마디씩 던진다. 육각형을 그릴 때 삼각형과 사각형의 넓이를 합쳐서 만든 거냐, 나도 똑같이 그렸지만 넓이를 구하는 방법은 달랐다, 다각형이 되려면 더 선을 반듯이 그려야 되는 거 아니야, 더 쉽게 그리는 방법도 있다, 등 다양한 질문과 피드백으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서너 명이 서로 다른 풀이과정을 발표하고 토론하다가 한 시간이 흘렀다. 교사는 그 문제에 대해 딱히 '베스트 풀이과정'을 정해주지 않은 채 수업을 마무리했다.


넓이가 36 제곱센티미터인 다각형 그리기


이 수업을 참관하면서 딱 두 가지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1. 왜 그렇게 풀었는지 말로 설명하는 것(토론)이 이 수업의 전부라는 점

2. 교사가 학습 정리를 위해 베스트 풀이 방법을 정해주지 않고 오픈해 놓은 점


2012년 즈음, 1학년 수학 교과서에 스토리텔링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수학 교과서에 동화가 들어왔고 글밥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식을 세워야 하는데,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데도 한참이 필요했다. 학생들은 3+6이 9라는 것은 잘 알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식(3+6=?)을 만들어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스토리텔링 수학이 왜 초등학교 수학에 도입되었을까? 수학동화를 통해,

1. 문제 상황을 수학적으로 인지하는 수학적 사고력,

2. 수학적 시선을 식으로 바꾸어 풀어낼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

3. 그것을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 의사소통능력을 기르기 위함일 것이다.

그것은 결국 답을 구하는 것보다, 주어진 문제 상황과 그것을 풀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수학이다.


캐나다 수학 수업에서 토론을 위해 1시간을 할애한 이유도, 베스트 풀이 방법으로 끝맺음하지 않고 수학 수업을 마무리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어떻게 풀었는지보다, 왜 그렇게 풀었는지 알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답이 아니라 
문제와 풀이과정에 주목하는 수업


'왜 그렇게 풀었는지'에 주목하는 수업은 결국 개념과 원리에 주목하는 수업이다. 개념과 원리를 떠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교사들이 선행학습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쉽고 빠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원리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 초등학교 교사라면 모두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교사가 나눗셈 단원에서 12÷4가 왜 3이 되는지 그 의미와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묶거나 덜어내어 보고, 막대를 그려 나누어보아도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어차피 12÷4=3을 아는 것이 오늘의 학습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미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때로는 교과서가 방해를 하기도 한다. 교과서 안에 학습목표, 풀이과정, 때로는 공식까지 친절하게 제시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문제의 방식이나 교사의 발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의 캐나다 수학 수업에서, 만약 문제가 ‘넓이가 36인 다각형을 그리시오’가 아니라 ‘주어진 다각형의 넓이를 구하시오' 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문제의 풀이과정은 넓이 구하는 공식과 연산이 전부다. 넓이를 구하는 공식의 원리, 각 도형의 정의와 관련한 토론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캐나다 초등학교의 수학 시간. 한 사람이 풀이 방식을 발표하면, 왜 그렇게 풀었는지 토론이 시작된다.


평가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평가가 맞고, 틀리고를 평가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과정과 원리를 강조하는 수업은 힘을 잃을 것이다.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로, 캐나다 초등수학 수업에서 딱 한 가지만 내 교실로 가져오고 싶은 것을 고르라면 바로 '평가표'(아래 사진)다.

 

평가표를 사용하는 평가방식이 풀이과정을 평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캐나다 학교에서는 한국의 수행평가와 비슷한 Quiz를 자주 본다. 따로 수학시험이 있다기보다 그것이 모여서 학기말 평가가 되는데, 이때 점수로 매기는 것이 아니라 평가표를 사용한다. 평가표에는 평가등급이 나뉘어 있고, 그 아래 몇 가지 세부 기준들이 적혀있다. 평가를 할 때는 학생이 풀이과정에 해당하는 세부 기준에 형광펜으로 색칠하는 식으로 평가한다. 평가표에는 정답 여부도 평가대상이지만, 풀이과정과 결과가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있는지가 포함되어있다. 분명, 풀이과정도 함께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2번 문제. 67.19로 풀어놓고 답은 64.19로 썼다. 평가표를 이용했기 때문에 틀렸다고 하지 않고, generally(대체적으로) 맞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평가기준표가 있다. 주로 교사가 보는 평가계획서 안에 있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위의 사진처럼 평가표를 시험지 하단에 함께 제공하니 여러 장점이 있었다. 학생들은 논리적인 풀이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 좋았고, 평가가 명확하지만 간단해진다는 점에서 교사에게도 효율적이다.




수학 개념을 장착하고 그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학 교과에서 초등시절에 갖출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단위끼리 환산할 줄은 알지만 단위의 실제 크기는 가늠할 수 없는 아이들, 통분은 할 줄 알지만 분수의 덧뺄셈에서 통분이 필요한 이유와 그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 나눗셈은 할 줄 알지만 몫과 나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학교 현장에 많이 있다. 


그러나 수학적 개념이나 원리를 모르는 학생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수학은 단계적인 교과다. 전에 배웠던 개념은 새롭게 배우는 개념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그렇기에 초등시절이야말로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형성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개념과 원리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한 문제만 풀어도 괜찮다. 답보다 문제와 풀이과정에 주목하며 풀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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