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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14. 2020

소통을 연습하는 아이들

인스타그램에 달리는 ‘우리 소통해요’라는 댓글. 요즘 사람에게 소통은 ‘맞팔’이고 ‘좋아요’다. 그들은 SNS 속 소통에 능(能)하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의 소통은 어떨까? 두 사람 이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말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이들의 의사소통능력은 얼마만큼일까?


캐나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약 한 달 동안 진행되었던 부엉이 프로젝트 학습이 끝나는 날,  5학년 학생들이 1학년 교실에 몰려왔다. 후배들이 그동안 배웠던 것을 정리하여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레젠테이션 버디(Presentation Buddies)가 되어주기 위해서다.


교사는 발표를 위한 포스터 양식을 제공했다. 주어진 양식을 보고 5학년이 리더가 되어 1학년에게 질문을 한다.


"제일 좋아하는 부엉이는 뭐야?"

"그 부엉이가 왜 가장 좋았어?"

"부엉이는 뭘 먹고살아?"

"부엉이에 대해 배울 때 제일 재미있었던 점은 뭐야?


5학년은 후배의 대답을 글로 쓰고, 1학년은 자신의 대답을 그림으로 그려, 하나의 포스터를 만들어 함께 발표했다.

 

5학년이 글로 쓰고, 1학년이 그림으로 그려 함께 완성한 발표 포스터


만들어진 포스터와 발표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1학년 학생의 발표능력도 중요했지만 핵심은 역시나 프레젠테이션 버디의 의사소통능력이다. 적절한 질문을 만들어내지 못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학생도 있고, 1학년 동생들의 대답이 시원찮으면 더 이상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써버리는 학생도 있다. 또 소통이 잘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언어적 표현이나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한참 어린 동생과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할지 어려워하는 학생도 있다. 의사소통이 잘 되었던 그룹은 당연히 알찬 포스터와 발표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활발한 의사소통이 공동의 문제 해결 수준을 높여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활동이었다. 


소통이 없는 회의가 얼마나 빈 껍데기뿐인지 사회생활을 해 본 어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나. 우리 사회는 온라인 소통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에서는 소통능력을 가르치고 있나.


의사소통능력은 머리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다. 의사소통은 오직 관계 속에서만 그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의사소통능력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소통의 질에 따라 공동의 목표가 달성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교실에서 협동학습이나 모둠학습을 한다. 이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뭘까? 바로, '무임승차'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는 재능이나 지식수준이 비슷하다. 그래서 과제를 분업화하는 과정에서 무임승차가 생긴다. 또 친구들끼리 기존에 맺어 온 관계도 영향을 끼친다.


“쟤는(혹은 나는) 원래 못해.”

 

또래 관계 속에서 학습된 무기력이나 이미 형성된 또래 지위가 공동의 과제 해결을 위한 상호작용을 어렵게 한다. 캐나다 초등학교의 프레젠테이션 버디 활동이 좋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의사소통 대상의 범위를 같은 반 친구로 국한하지 않고 선배와 후배로 확장시켰다. 더 나아가 다른 반 친구, 부모님, 학교 주변 이웃 등으로 확장시킨다면 개인의 책무성을 높이고, 보다 긍정적인 상호작용 경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5학년이 유치원 및 1학년 교실에 가서 프레젠테이션 버디(Presentation Buddies)가 되어주는 활동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의사소통능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사소통능력에는 몇 가지 하위 능력이 있는데, 이는 의사표현능력과 경청 능력을 포함한다. 교실수업에서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은 주로 발표다. 발표는 교사의 발문에 손을 들고, 지목을 받으면 일어나 답한 뒤 다시 자리에 앉는 행위다. 그런데 과연 손을 들고 지목받아하는 발표가 활발한 의사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물론 교사의 발문 종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손을 들고 지목을 받아서 하는 발표는 닫힌 대답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확장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학생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발표는 늘 하는 학생만 해요."

"학교 와서 수업시간에 입 한 번 뻥긋하지 않고 집에 가는 학생도 많아요."


이것은 아마 모든 고학년 담임교사의 고민일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남의 발표를 비판적으로 듣고 피드백까지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발표 대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청자의 반응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활동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Show and Tell (혹은 Show and Share)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 학급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


매주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들고 교실 맨 앞, 교사의 자리에 선다. 3-5분 정도 물건을 소개하고 이 물건이 왜 나에게 소중한지에 대해 발표한다. 지금까지 모았던 하키대회 메달, 밤마다 안고 자는 인형, 반려동물 햄스터까지, 그 물건은 다양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어떤 학급에서는 Monday speech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말로 쓰는 일기'와 같다. 일기장에 쓴 글을 읽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주말에 있었던 일과 그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친구들 앞에서 원고 없이 말하는 시간이다.


두 활동 모두 자신의 주변 세계에서 말할 거리를 찾아내고, 충분히 큰 목소리와 자신감 있는 태도로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활동이다. 두 활동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학생들에게 친숙한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 친구의 소중한 물건과 친구가 주말에 했던 일은 듣는 사람에게도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다. 햄스터를 가져온 날은 발표보다 질문이 더 많을 정도였다. 친숙한 소재에 대한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반응과 질문은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했다.

 

유치원 및 1학년 학급에서는 비슷한 활동들을 좀 더 간단하지만 몰입 있게 진행한다. V.I.P.로 선정된 학생이 일주일 내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을 가져와 발표했다. 월요일은 가족사진, 화요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 메뉴, 수요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등 짧고 간단한 발표지만, 이것 역시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듣는 의사소통 훈련이다.


이러한 Show and tell 활동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 7학년까지 모든 학급에서 이루어졌다. 아래 사진처럼 학년 수준에 맞추어 적절히 재구성된 활동으로 의사소통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캐나다의 아이들은 8년 내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이야기하고 비판적 피드백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주 V.I.P.로 선정된 Selena의 가족사진이 붙어있는 유치원/1학년 교실 칠판
Show and tell 대신, Show your helmet으로 재구성된 6학년 활동.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물건으로 헬멧을 장식해서 발표함


사회는 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데, 학교에서는 혼자 책상에 앉아 문제의 정답만 잘 골라내는 사람을 키워낸다면 사회와 교육은 분리된다. 그러나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 의사소통 역량을 갖춘 어른이 필요하다면, 학교는 의사소통을 연습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 의사소통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정치, 경제, 과학, 의료, 문화, 예술까지 요즘은 모든 것이 파트너십,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개인능력이 뛰어나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어렵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들의 ‘실전’을 위해 준비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학교에서는 마음껏 실수하며 성장해도 괜찮지만 사회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학교의 다양한 규모와 종류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비판적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한다. 의사소통을 연습하는 작은 어른들이 학교에 넘쳐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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