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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Oct 24. 2020

내 마음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

캐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가정통신문을 가져왔다. 상상치도 못한 내용이 담겨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한 단체를 통해서 생후 3개월 된 아기와 엄마가 2주에 한 번씩 교실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아기가 뒤집고, 기고, 앉고, 서는 성장과정을 관찰하기 위함이고, 또 한 가지는 아기의 비언어적인 표현과 감정을 연결해 보는 감정인지교육을 위함이라고 했다. 기분이 좋으면 미소를 짓거나 팔다리를 흔들고, 배가 고프면 울거나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는 등, 말을 할 수 없는 아기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지 살펴보는 공부인 것이다.


ⓒ aussiechildcarenetwork


딸아이 학급처럼 아기를 교실에 데려와 그 감정을 관찰하는 것은 이 곳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캐나다 대부분의 학급에서 감정인지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초등교육은 학생이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그것을 규정해 보는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스스로의 감정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있어야,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서적 건강을 위해,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동적인 감정 처리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감정인지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는 나의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학생의 감정인지가 교사의 생활지도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의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학생 행동에 대한 통찰(insight)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문제행동에 대해서는 더욱 넓은 시선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지난 4월, 캐나다에서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갑작스럽게 학교 문이 닫혔다. 그 후 여름방학까지 포함해서 약 4개월 동안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캐나다 교육청이 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한 것은 학생들의 Mental Health(정신건강)였다. 이메일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관련 이슈가 없는지 계속해서 살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신건강에 관한 다양한 안내문을 꾸준히 보내기 시작했다. 그 안내문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물론이고, 부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 유용했다.


예)
-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대화를 듣게 하지 말아라. 아이는 이 상황에 대한 부모의 대응을 관찰하고 있으며, 부모의 불안은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

- 사회적 고립이 아이들에게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모가 이해해 주어야 한다.

-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또래 친구들과 계속 연결되어있을 수 있도록 도와라.

- 아이가 갖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직면하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라.


이러한 양육 방향에 대한 지침 외에도,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감정인지와 관련한 교육활동자료 또한 다양하게 제공해주었다. 아래의 사진들이 그중 일부를 가져온 것인데, 특히 마음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다.


It's ok to not be ok.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아이가 마음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숨겨지곤 한다. 걱정하실까 봐, 부끄러워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부정적 감정과의 직면이 두려워서, 혹은 표현해 본 적이 없어서.


스트레스가 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적어두고 하나씩 해 보며 지워나가는 빙고게임(왼쪽)/하루를 돌아보며 사과(좋았던 일)와 양파(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활동(오른쪽)


감정인지를 촉진, 장려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돕기 위한 이모티콘 게임



초등학생이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각 나이에 주어지는 그들만의 스트레스가 있다. 그 스트레스를 능동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감정으로부터 왔는지 아는 것이 분명히 도움이 된다. 


김영하 작가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가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졸업할 때까지 '짜증 난다'는 말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짜증 난다는 말 안에 너무 많은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황당한 감정, 엄마가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서운한 감정, 나보다 인기 있는 친구에게 느끼는 질투하는 감정,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해서 속상한 감정 등. 학생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짜증 난다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의 정서적 건강을 지키는 첫 번째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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