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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an 15. 2021

내가 사랑한 K-급식

교실에 이런 애들 한 명씩 꼭 있다. “야, 오늘 급식 뭐냐?” 친구들이 물으면, 줄줄 꿰며 대답하는 급식 메뉴 알리미.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실은 교사인 나도 궁금하다. 오늘은 어떤 맛있는 메뉴가 나오려나. 교사도 가끔 디저트로 나오는 요구르트, 바나나우유 그런 거! 너무 소중하다.


캐나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한국 급식 생각이 많이 났다. 캐나다 학교에는 급식이 없다. 음식 알레르기와 종교적 이유로 음식 제한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사도 학생도 모두 도시락을 싸 간다. 바로 조리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아무래도 메뉴나 맛에 제한이 있다. 또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먹기 때문에 냄새나 모양 등 신경 쓰이는 부분도 많다. (우리에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그들에겐 스컹크 냄새 같다는 건 정말 충격이었다.)


게다가 점심시간은 길어야 20분. 몇 분만에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먹는다. 그에 반해 한국 급식시간은 1시간. 밥과 국에 종류별 반찬까지 5구 식판에 빈 곳 없이 음식이 담긴다. 생각해보면 어딜 가나 한국처럼 다양하게 차려놓고 먹는 나라가 없다. 또 한국사람처럼 먹는 것에 진심인 국민도 없다. 캐네디언 시아버님 환갑잔치 메뉴로 온 가족이 피자 한 판 시켜 간단히 먹었다 하길래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잔치하면 먹는 게 메인 아닌가. 시켜먹더라도 푸지게 시켜서 차려먹었을 텐데 말이다.


되돌아보면 6개월간의 연수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보다 음식이었다. 캐네디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파견 교사들은 더욱 식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홈스테이 맘의 도시락 메뉴는 주로 전 날 저녁에 먹고 남은 음식이었다. 예를 들면, 파스타, 라자냐, 피자, 치킨. 가끔 간단한 샌드위치와 쿠키. 홈스테이 맘이 차별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남편과 자식들도 그렇게 도시락을 싸준단다. 그리고 아침은 시리얼. 매일 삼시세끼 외식하는 기분에 늘 배가 더부룩하다 했다. 음식으로 느끼는 결핍은 곧장 향수병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러니 캐나다 초등학교에 출근할 때마다 한국 학교 급식이 얼마나 그리웠겠나.


요즘은 SNS상에서도 서로 학교 급식 메뉴 사진을 올리며 자랑한다. 어떤 학교는 '급식이 맛있는 학교'로 유명해지기도 한다. 1인 1 랍스터나 탄두리 치킨 같은 획기적인 메뉴로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학교급식 영양사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의 급식제도에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획일적으로 운영되는 집단급식에 자율성 침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 또 부실급식이나 위생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만약 그런 운영방법상의 문제가 있다면 정말로 고민하고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K-급식 그 자체는 캐네디언 학교에 소개하고 싶은 자랑거리다. 특히  5구 스텐 식판은 K-급식의 상징 같은 게 아닐까. 5구 식판 위에 담긴 밥과 뜨끈한 국, 매일 바뀌는 세 가지 반찬은 K-급식만의 시그니쳐다. 전문가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여 영양과 조화를 고려한 식단. 동지면 팥죽, 대보름이면 오곡밥 같은 절기 음식까지 때 맞춰 먹여주고, 거기에 디저트까지.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집에서도 그렇게 갖춰먹기는 힘들 거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남이 해 주는 밥이다. K-급식, 5구 스텐 식판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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